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만났다가 헤어지고 났다가 없어지는 것을 불가(佛家)에서는 회자정리, 생자필멸이라고 한다던가. 이는 굳이 불가뿐 아니라 자연의 섭리이자 요즘 말로 생태계의 순환원리이다.

진나라 시황제는 죽지 않는 풀을 구하려 발버둥쳤다지만, 만약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면, 꽃이 피어서 지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을 이렇게 담담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시도 많지 않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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