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는 생극론(生克論)의 입장에서 보면 고대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나 민족간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대는 힘이 지배하는 상극의 세계였다. 힘이 센 민족이 약한 쪽을 침략해 모든 것을 빼앗고 이민족을 노예로 삼거나 죄의식 없이 처단했다. 이 땐 강력한 무력이 절대가치의 기준이어서 정복자는 찬양의 대상이 되고, 피정복자는 고난을 당해도 당연시 여겼다. 통치자를 신과 동격시 해 웅장한 신전을 짓고 장엄한 비석을 세우는 것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중세는 문명권 중심의 체계였다. 한문문명권(동아시아) 산스크리트문명권(서남아시아) 라틴문명권(유럽) 아랍어 문명권(이슬람)이 각기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다른 보편적 질서를 확립하고 소속 국가끼리 협력하며 사는 세계였다.
각각 같은 종교를 가지고 중심국가의 문어(文語)를 공용으로 해서 선진과 후진이 문화를 나눠 가지며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를 유지했다. 고대의 힘 대신 합리성이 인정되는 시대여서 중심국가라도 주변국을 함부로 다룰 수 없어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 상생의 기운이 충만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오래되면 낡고, 높이 오르면 내려오게 되는 탓일가. 중세 중심국이 무력해지고 민족국가들이 등장하면서 근대가 열렸다. 그러나 근대는 상극의 세계였다. 민족국가 중 힘센 국가들이 다시 고대와 같은 제국을 꿈꾸며 식민시대가 시작되고, 동서냉전의 양극시대가 이어졌다. 1,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계급투쟁이 전개되면서 다시 고난의 지구촌이 됐다.
근대는 고대에 비해 휠씬 짧은 기간이었지만 2차대전서만 6천5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냉전이 종식된 21세기의 과제는 대량 살상시대 근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체계를 열어 상생의 기운을 되찾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문명권끼리 서로 화합하며 평화롭게 살아온 중세체제와 정신에서 교훈을 찾고자 하며, 실제 문명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오랜 준비끝에 내년부터 단일통화권이 되는 유럽연합(EU)이 그러하며, 아세안(ASEAN)이 초보적이나마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슬람권은 문화의 동질성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 여건만 조성되면 쉽게 결속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문제는 미국이 문명권중심의 재편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EU의 진전을 아직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으며,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등장할까 두려워 제1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을 별개의 문명권으로 치켜세우며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채질하는 것도 동아시아 결속을 방해하려는 전략일 뿐이다.미국이 이처럼 시대적 요청에 역행하는 것은 지금 누리고 있는 세계유일의 최강 패권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 하기 때문으로 공화당의 부시가 집권한 후 팍스아메리카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부시는 국익을 앞세워 교토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유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MD체제를 강행해 왔다.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뉴욕 대규모 테러 응징자세도 힘의 논리가 우선시 되고 있다. 철저한 보복공격을 다짐하며 다국적군을 편성하고 각종 첨단무기도 모자라 핵무기 사용도 배제않겠다는 태세다. 무고한 많은 사람을 살상한 죄과는 응징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헐벗고 굶주린 세계최빈국을 그렇게 두드려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마치 고대의 정복자가 승전고를 울리며 웅장한 신전을 짓고 비석을 세우려 하는 것 처럼 보여 안타깝다.
역대 어느 제국도 망하지 않은 제국은 없었다. 변화의 시대 변화로 대처않고 구태를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전시대적 패권주의 망상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미국도 살고 전세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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