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자연학습원 안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숲속의 빈 터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숲에 가려 천평도 채 되지 않는다. 작년 가을, 적막감 속에 까치소리가유난히 크게 들릴 즈음 숲속의 비밀을 목격하였다.
장끼 한마리가 먼저 숲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건너편 숲으로 내달음질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11마리의 앙증맞은 새끼들이 일렬종대로 아빠를 따라 냅다 달려가더니만, 마지막에 어미 까투리가 뒤를 이어 숲으로 사라졌다. 장끼부부 가족들의 가을나들이였다. 순간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그 가족들이 사라진 숲속을 한참 바라보며 흐뭇한 광경에 작은웃음과 숲의 비밀을 알아낸 듯한 묘한 즐거움에 뿌듯했었다.
장끼부부의 가족나들이를 보면서 언제인가 가정폭력문제로 상담했었던 일이 떠오른다. 겁에 질려있던 아이의 눈은 울었는지 충혈되어 있었고 상처투성이인 아주머니의 헝클어진파마 머리카락 속에는 피가 엉켜있었다. 폭음과 폭설로 시작되었던 남편의 폭력은 갈수록 도가 지나쳐 옷을 모두 벗기고, 칼을 들이대거나, 가스통 밸브를 열며 라이터로 협박당하는지경에까지 이르러 차라리 그자리에서 죽고 싶다고 하였다. 그날도 남편의 폭력을 피해 찾아 온 아주머니는 여성의 쉼터로 안내해 달라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죽고 싶다던 그 일이 생각난다.
본능적인 부부 꿩의 사랑, 새끼사랑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들의 어려운 이웃을 보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앞장서던 아빠 장끼와 새끼들을 보호하며뒤따르던 어미 까투리처럼 알콩달콩 살아갈 수는 없을까.
오늘따라 가을하늘은 더 없이 높고 푸르다. 이 가을에 다시 숲속의 빈 터로 찾아가 꿩들의 단란했던 그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
구미가족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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