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사용한 '악(evil)', '성전(crusade)' 등의 용어가 과연 적절했는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4일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테러를 응징하고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으로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부시는 또 17일엔 미국을 공격한 테러범과 세력을 '악을 행하는 자'로, 화요일의 테러참사를 응징하기 위한 '21세기의 첫 전쟁'을 악을 제거하기 위한 '크루세이드'로 규정했다.
마치 종교 집회에서나 들을 법한 악과 성전이라는 표현이 대통령의 입에서 계속 흘러나온 것이다.
물론 악이라거나 크루세이드라는 단어 선택이 테러집단을 의미하고 미국의 단호한 테러분쇄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초강대국의 최고통치자가 문명간 충돌을 야기할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쓸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로 표현한 적은 있으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누구도 악 자체를 주적으로 지목한 적은 없다.
레이건의 '악의 제국'에서 악은 수식어로 쓰인 반면 부시의 '악'은 명사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또 크루세이드란 용어는 십자군 또는 성전(聖戰)이란 종교적 의미를 가진 단어로 중세 십자군 전쟁과 같은 문명간 충돌을 연상시킬 수 있으며 이런 자극적 단어사용으로 온건한 이슬람 교도마저 미국에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지적됐다.
반면 언어학자인 바버라 월러프는 "악이란 단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며 이번 테러참사가 불가사의한 것도 아니다"라면서 "정치인으로서 부시 대통령의 임무는 반테러작전을 마련하는 것이며 누구도 그런 악에 대항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간지 편집장이기도 한 월러프는 "악이란 표현은 우리가 정확히 대항해야 할 적을 모르고 이슬람과 연관시키길 바라지 않는 상황에선 신중히 선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17일 워싱턴의 이슬람센터를 전격 방문, "이슬람계 미국인들은 미국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기여를 했다"며 "그들은 존경으로 대우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항간의 악, 성전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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