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실 밖의 넓은 세상-미디어 교육

첫째,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면서 같이 흥분한다. 인기 가수, 캐릭터 등에 대한 이해는 기본. 둘째, 컴퓨터를 배운다.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 같은 게임부터 익혀 머리를 맞대고 즐기면 더 좋다. 셋째, TV 유행어나 채팅 용어를 숙지하고 자녀들에게 수시로 써먹는다. 자녀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를 날리면 더 놀란다….

자녀들과 친해지는 방법들이다. 톡톡 튀는 아이들, 자기들만의 사고와 표현 방식으로 어른들의 접근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다가 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초교생 이상 자녀를 둔 부모라면 이같은 고민에 한번 쯤은 빠져봤을 일. 큰 맘 먹고 이런저런 방법에 매달려 보지만 이내 지친다. 이쯤 되면 TV나 컴퓨터, 비디오 따위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꾸지람 뿐이다.

쉴 새 없이 발전하는 컴퓨터·TV·영화·인터넷 등 미디어의 홍수가 사회 전반을 바꾸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대하고, 활용토록 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미미했다. '미디어 교육'이란 화두가 교육계에 떠오른 건 벌써 오래 전. 그러나 학교에서의 미디어 교육은 여전히 학생들이 픽 웃어넘기는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다. 가정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부모는 물론 교사들조차 답답해하는 현실인 것.

이런 와중에 대구에서 미디어 교육에 뜻을 두고 있는 교사들이 지난 7월 모였다. 여름방학 동안 연구 모임과 워크샵을 통해 이론적 기초를 다진 교사들은 지난 7일 '미디어 교육 연구회'를 창립했다. 창립식 때 교사들이 내놓은 자료는 의미심장했다. 언뜻 평범한 미디어 관련 조사 자료 같았지만, 가르치는 초·중학생 278명을 단순 설문이 아니라 교사들이 직접 면담 조사한 것부터가 흔치 않은 시도였다.그 결과 드러난 것은 학생들의 생활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미디어에 빠져 있다는 사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는 학생이 34.6%였고, 방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이라는 학생도 45.2%나 됐다. 잠잘 때까지 계속 켜둔다는 학생도 33.2%. 그런데도 컴퓨터를 학습에 이용한다는 학생은 8.3%에 불과했다.

TV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제일 먼저 켜고(39.1%), 켜놓은 채 밥을 먹고(69.6%), 잘 때까지 켜놓는다(49.3%)고 했다. 보는 프로그램은 만화·오락·쇼·드라마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으나 학습 프로그램을 보는 비율은 5% 미만이었다.

컴퓨터 때문에(63.6%), TV 때문에(71%) 부모로부터 학생들이 많았지만 "너무 오래 한다(본다)"는 이유 뿐이었다. 왜 오래 하면 안 되는지, 자신이 하는 게 뭐가 잘못 됐는지에 대한 꾸중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TV·컴퓨터에 매달려 있다는 학생이 대다수이고, 하루 종일 컴퓨터만 했으면 좋겠다는 학생도 많았다. 그러면 이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관련 직업을 꿈꾸고 있겠구나 싶겠지만 대답은 전혀 딴판. 고작 10.8%만이 컴퓨터 관련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조사를 하면서 교사들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막연히 그렇겠거니 하던 것보다 더한 결과에 "학생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는 것. 박근자(칠곡초교) 교사는 "중독 정도나 성인물 시청 경험 등을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면서, "부모와 자녀가 미디어를 통해 나누는 대화가 거의 없는데다 시각 차가 워낙 커 갈등도 있어 보였다"고 했다.

정부는 정보통신 활용 교육(ICT), 정보통신 윤리 교육 등을 내년부터 본격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교사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미디어 활용 교육은커녕 교사들조차 미디어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교안 몇 개, 프로그램 몇 개 던져주고 호들갑 떤다고 교실 수업이 쉽게 달라지겠느냐는 것. 형식적으로라도 수업에 도입하려면 일 부담만 커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걱정이 앞섰던 때문일까, 미디어 교육 연구회 교사들은 스스로를 다잡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박세창(대구남중) 교사는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에 대해 학생들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공부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았다"면서 "미디어 교육은 학교와 가정이 함께 시급히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미디어 두려워하지 않기, 먼저 훈련하고 활용하기, 그 속에서 즐겁게 가르치는 방법 찾기'. 교사든 학부모든 학생들과 친해지고, 올바로 이끌기 위해선 이 방법 뿐이라는게 교사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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