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37)-과장법으로 여유와 풍유를 읊조린 모기노래

여름은 메뚜기 한철이듯이 모기 한철이기도 하다. '모기 밑구멍에 당나귀 그것이 당할까!' 작은 것 속에 큰 것을 넣으려 하는 우격다짐을 나무라는 옛말이다.'모기 보고 환도(還刀) 빼기!' 대단하지 않은 일에 쓸 데 없이 크게 분노하는 사람을 빗대어 일컫는 옛말이다. '모기 대가리에 골을 내랴!' 모기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골을 빼낸다는 말이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의 옛말이다. 이들 옛말의 뜻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기를 아주 작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메뚜기나 거미와 개미처럼, 모기도 여름 벌레로 빼 놓을 수 없다. 멀리 뛰는 힘을 노래한 것이 메뚜기 노래라면, 줄을 치는 특징을 노래한 것이 거미 노래이며, 허리가 잘록한 것을 빌미 삼아 질병을 노래한 것이 개미노래이다. 개미노래를 보면 아주 작은 문제를 과도하게 확대하여 대단한 질병으로 보는 것이 탈이다. 그렇다면 모기노래는모기의 무엇을 특징으로 잡아 노래할 것인가. 우선 노래부터 들어보자. 모기 한 쌍을 잡아내여

열두 반상을 끼미내여

그래고도 쭉지 반이 남았네

건네 삼촌 오려다 놓고

후련잔치를 부쳐볼까

성주에 사는 노복이 아주머니의 모기노래이다. 모기 한 쌍을 잡아서 '열두 반상'을 꾸며내었단다. 작게 보면 열두 가지 반찬을 만들었고, 크게 보면 열 두 상을 차릴 수 있도록 요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도 아직 한 쭉지와 반 쭉지가 남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모기 한 쌍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듯 떡 벌어지게 차려내고도 모기 고기가 상당히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대단한 과장법이다.모기는 실제로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을 뿐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한결같이 작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에는 이렇게 푸지게 묘사되고 있다.그러니 이 많은 요리를 가족끼리 다 먹을 수 없다. 건네 마을 사는 삼촌도 모셔다 놓고 후행(後行) 다녀 온 잔치나 크게 벌여보자는 것이다. 나눔의 뜻도 대단히 여유있다.한 마디로 통이 크다. 앞마당 쓸어 찹쌀 한 되

뒷마당 쓸어 몹쌀 한 되

분통 안에 비배 였다

엊그적게 비배 여서

괴얏는가 들어봐라

술이야 괴+ㅆ 소마는

안주 없어 대수로다

해남 사는 김중촌 할머니 소리이다. 앞뒷 마당 쓸어서 찹쌀 한 되와 멥쌀 한 되를 누룩과 함께 독 안에다 비벼 넣었다. 여유와 풍류가 대단하다. 어니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찰스 핸디의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등 요즘 '느림'과 '여유'를 주제로 한 책들이 많이 간행되고 있는데, 모기 노래에서는 '여유'와 '풍류' 또는 '낙천성'이 두드러진다. 술을 빚어먹을 쌀이 없어도 걱정이 없다. 마당만 쓸면 쌀 한두 되박 쯤은 거뜬하게 마련할 수 있다는 여유와 배포가 있기 때문이다. 독에다가 쌀로 찐 꼬두밥과 누룩을 적절히 버물려 담아서 술을 빚는데, 이를 흔히 비벼 넣는다고 한다. 이렇게 담아 둔 술독을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두면 2, 3일 만에부글부글 괴기 시작한다. 술이 익는 셈이다. 따라서 술이 다 익었는가 확인하는 방법도 청각적이다. 술이 다 괴었는가 부글부글 하는 소리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는 사람은 딸이나 며느리와 같은 아랫사람이다. 달리 말하면 술이 익은 것을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확인과 함께 곧 술상을 차려내야 할 사람이다. 따라서술이 익었다는 대답에 앞서 술상 차릴 걱정부터 앞선다. 술이야 충분히 괴어서 잘 익었지만 안주가 없는 것이 큰 일이라는 말이다. 안주 걱정 거그 둬라

한 손에는 총을 들고

한 손에는 활을 들고

뒷동산에 지치 달려

모구 한쌍 앉었기에

총으로 놓고 활로 쏘+ㅆ고

마당 쓸어 술을 빚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안주 걱정할까보냐. 따라서 대답도 수월하다. '안주 걱정 거기 둬라!' 참으로 멋이 넘치는 대답이다. 아랫사람이 무슨걱정을 하면, 웃어른이 '무슨' 걱정 거기 둬라는 식으로 받아준다면 아랫사람 살기는 막 났다. 시원찮은 상전일수록 자신의 걱정까지 아랫사람에게 뒤집어씌우거나 문제해결을 강요하기 일쑤이다. 이처럼 모든 걱정을 '거기 둬라'고 하는 어른들은 생각의 여유도 있고 문제 해결의 역량도 탁월하다. 마치 포수가 멧돼지 사냥이라도 가듯이 총과 활을 갖추어 들고 뒷산으로 치달아 가다가 모기 한 쌍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총을 놓고 활을 쏘아 잡는다. 왜 활은 쏘고 총은 놓을까. 활은 활시위에서 화살을 걸어 쏘아보내지만 총은 화약에 불을 놓아서 총알을 날려보낸다. 따라서 불을 지핀다, 불을 놓는다는 뜻에서 총을 '놓다'고 하는 것이다.

열두 놈이 끄어들에

메+ㅊ 반상을 차렸느냐

아곱 반상 차렸수다

메+ㅊ 쭉지나 남었느냐

두 쭉지 남었수다

소게 실고 말게 실고

천지대로 미영동냥 가쟈스라

총과 활 등 대단한 무기를 동원해서 모기 한 쌍을 잡았는데, 그 몸집 또한 열 두 사람이 겨우 끌어들일 정도로 거대하다. 멧돼지 몇 마리 잡은 셈이다. 이를요리하니 아홉 상이나 되었다. 그리고도 아직 두 쭉지나 남았다고 한다. 따라서 소와 말에다 제각기 한 짐씩 싣고 풍류를 즐기러 가자고 한다. 대단한 과장법이자 시적상상력이다. 다른 노래도 이와 같다.저 건네라 둥구나무 가서

모구 한 마리 잡았으면

열두 반상기 채리고도

또 한 다리가 남고 남고

느그 삼동세끼리

훌륭한 잔치를 열겠구나

남원에 사는 임규임 할머니 소리이다. 며늘아기가 "안주가 없어서 어쩔기라우?" 하자 "안주 걱정은 네 말아라!" 하고는 위와 같이 방책을 알려준다. 모기 한마리만 잡으면 열두 반상기 두루 차리고도 한 다리가 남으니, 너희 삼동서끼리 큰 잔치를 열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이다. 터무니없는 과장이지만, 이러한 시적 상상력 속에 생활의 슬기가 갈무리되어 있다. 작은 것도 크게 보고 적은 것도 많게 보면 무엇이든 쓰고 남을 정도로 풍성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보잘것없이 작은것도 대단히 크고 풍성하게 여겨 만족할 수 있다. 좋은 일은 조그만 것도 크게 과장하면 몸과 마음이 다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을 이처럼 확대재생산하면 몸과 마음이 다 불편하다. 개미노래가 그러한 보기이다.온몸이 질병 투성이 아닌가. 지금 우리는 나라 안팎이 온통 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가져야 하며 배포도 넉넉해야 한다. 작은 문제를 대단한 불상사처럼 확대하고 과장하는 일은 지양하되, 작은 기쁨이나 사소한 길사는 빠짐없이 주목하고 확대재생산해야 한다. 테러에 의한 미국의 대참사는 엄청난 충격이자 비극이다. 이를 냉정하게 해결하려면 가능한 축소지향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미국이 흥분하면 3차대전의 비극으로발전한다. 나는 테러도 반대하지만 전쟁은 더욱 반대한다. 테러도 보복 탓이고 테러에 대한 보복 또한 보복행위라는 점에서 테러와 다르지 않다. 보복 테러가 보복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보복 전쟁은 언젠가 더 큰 보복 테러의 재앙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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