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도탈락 문제아 학교'옛말 대안학교 새 교육기관 정착

지난 17일 오후 대구 남부도서관 시청각실. 200여명의 학부모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대안학교로 유명한 '간디학교' 양희창(38·사진) 교장의 특별강연회 자리. 행사를 기획했던 도서관 관계자도 "청중이 너무 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떻게 이리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안학교 열풍이 어느새 대구 한가운데까지 밀려든 것. 무엇이 이렇게 많은 보통의 학부모들을 이런 자리로 몰리게 만든 것일까?

강연이 끝나고 간디학교의 생활, 교육과정, 졸업 후 진로 등에 대한 학부모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대답을 해나가던 양 교장은 문득 한 구석에 앉아 있던 청년을 가리켰다. "우리 학교 졸업생 같은데, 직접 대답하면 어떨까요?"

망설이던 청년이 강단에 올라섰다. "졸업하고는 대전에서 사회복지 관련 일을 했습니다. 한달에 80만원 정도 받았고요. 지금은 사회복지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보고자 대학 사회복지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청년의 어깨가 점점 넓게 펴졌다. 많잖은 월급 얘기를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자긍심이 가득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더 많은 학부모들의 가슴에 감동을 던졌다. "행복이란 사회적 성공이나 재산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면서 남을 돕고 살 수 있느냐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간디학교에서 그것을 배웠고 이제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농땡이, 중퇴생, 문제아… 대안학교 하면 떠올리던 단어들도 이제 폐기돼야 할 때가 온듯 했다. 대신 자리 잡을 말은 강한 개성, 적극성, 분명한 목표 의식… 같은 것 아닐까 싶었다.

1990년대 들어 중도탈락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대안교육 개념을 받아들여 '특성화 고교'라는 이름으로 대안학교를 처음 인가한 것이 1998년. 지금까지 11개교가 인가를 받았다. 비인가 학교도 10개 가까이 된다. 4년도 안돼 어느새 대안학교는 '중도탈락자 수용 기관'이라는 초창기 오해를 벗고 제도교육의 허점을 메워주는 '대체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짧은 기간에, 그것도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은 재정이 열악해 시설이 충분치 않고, 교육과정이나 교재, 수업방법 등도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무엇이 대안교육의 정착을 가능케 한 것일까?

간디학교가 한 예인듯 했다. 이 학교의 현재 구성은 중·고 과정 학생 108명에 교사 30명.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이 안되고 교사 1인당 4명 꼴도 안 되지만, 그래도 교사가 모자란다고 양 교장은 안타까워했다. "한 사람이 보통 3, 4개 과목을 맡습니다. 수십 개 특별 교과를 전문적으로 운영하려면 교사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재정 여건으로는 교사들이 짐을 나눠 맡을 수밖에 없죠".

오전에는 일반 학교와 꼭같은, 이른바 지식 교과를 운영한다. 특별 교과는 오후 몫. 이때는 의·식·주, 감성, 지식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수업 내용이 결정된다.

수업의 원칙은 집중화. 대안학교를 찾는 학생들은 관심 있는 몇몇 분야에서 나름대로 도사(?)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보는 것. 궁금한 점, 이해하지 못하는 점, 의견이 다른 점 등을 놓고 교사들에게 사정없이 질문을 퍼부어 댄다. 교사들도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상황.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교사 평가를 하고, 3학기 이상 낙제점을 받으면 그 교사는 해당 과목에서 빠져야 한다.

하지만 교사들이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교사들도 즐겁게 가르칠 수 있는 분위기'를 간디학교가 중시하기 때문. 대안교육에 대한 희망을 갖고 많잖은 월급을 감수하는 교사들이기에 수업에 열심인 것은 당연지사. 방학 때는 과목을 더 전문화하거나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자기 연수에 온 힘을 쏟는다.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도 눈여겨볼 부분. 입학에서부터 학교 운영, 교육 과정 등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지식교과 수업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심심찮아 마찰도 있지만, 학교측은 학부모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한다. 교육의 3대 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상호 관계가 활성화 되면서 학교 발전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

대안학교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학생·학부모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중·고교 신입생 각 20명을 뽑는 간디학교 경우, 올해 입학 경쟁률이 10대1이었다. 또 벌써부터 문의가 쏟아지고 있어 내년에는 50대1은 족히 될 것이라고 양 교장은 말했다.

매년 40명의 신입생을 받고 다음달 15일부터 내년 신입생 원서를 받는 경주 화랑고에는 벌써 30여명이 원서를 보내달라고 신청해 왔다.

대안학교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 대안교육에 뛰어들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양 교장은 "올해 들어 전국 각지에서 실제 대안교육을 보기 위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대안교육은 이제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제도 교육의 허상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아, 교육의 새로운 분야를 일구고 있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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