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해광 칼럼-제2 바벨탑은 무너지고

인간이 태초에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신은 언어를 혼잡케 하여 탑쌓기를 정지시켰다. 끝없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다. 이렇게 해서 바벨탑은 붕괴됐다.

피랍여객기 자살테러로 인한 110층짜리 뉴욕 세계무역센터 붕괴사건은 제2의 바벨탑 와해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으며, 국제정치질서의 새로운 변증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 욕망의 무한경쟁은 1973년 당시 세계 최고의, 하늘을 찌르는 415m의 쌍둥이 빌딩을 뉴욕시 허드슨 강변에 우뚝 세웠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최대의 물질문명의 중심이요, 정신문화의 본산임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붕괴참사는 천인공노할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날 CNN은 여객기가 남북양쪽타워로 충돌하는 장면을 방영하면서 "유구무언이니 그냥 보기만 해달라"고 떨리는 어조로 토했을 뿐이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밀랍날개를 달고 비상을 계속한다. "너무 태양에 가깝도록 높이 날지 말라"던 다이달로스의 간곡한 당부도 뿌리치고 오만한 비상을 계속하던 이카로스는 결국 뜨거운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버려서 추락하고 만다. 어쩌면 미국의 운명을 이카로스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제1차 세계대전이 국제사회에 미국을 출현시켰고, 제2차 세계대전은 소련을 국제무대의 주연배우로 등장시켰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의 평화기간은 20년, 1945년 2차대전의 종전 후 평화기간은 금년이 56년째이다. 혹자들은 평화기간이 양차대전에 비하여 너무 길다고 불평한다.

이번 테러사건의 의미와 전망을 크게 두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일방주의(unilateralism)가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어쩌면 세계사의 주도권을 양보할지도 모른다. 팍스 아메리카나에 종언을 찍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미국이 세계사를 주도하기에 더 이상 역사발전은 없다는 미국지상주의를 주장한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역사의 종언'을 마감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1776년 미국이 독립된 이래 한번도 본토가 공격받은 적이 없다. 피격당하기엔 너무 강하고 너무 멀리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쪽에는 대서양, 서쪽에는 태평양이 가로막고 있는 천혜의 요새이며, 그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미국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은 이 난공불락의 천혜의 요충지를 누가 감히 범접할 수 있을까 라는 말에 도전장을 낸 것과 같다. 십여일이 지난 지금 '미국이 뭉쳤다'(America United)는 슬로건이 성조기와 함께 물결친다. 이것은 보기에 따라서 국제사회에 그만큼 실추된 미국의 위신과 체면에 대한 애절한 자기변명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미국이 세계사를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종언을 고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마치 이카로스의 추락처럼 말이다.

둘째, 세계화(globalization)가 그 막을 내릴 수 도 있다. 즉 자유무역의 시대가 간다는 뜻이다. 세계무역센터는 이름 그대로 국제무역과 통상의 핵심이요 중앙이었다. 지구촌 200여개국의 60억 인구 중에 이번에 붕괴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제외하고 그 어느곳도 하루 유동인구 15만명이 출입하는 곳은 없다. 명실상부한 세계 교역의 본부가 처참히 몰락해 버렸다. 이제 얼굴없는 적을 상대로 한 전쟁, 그것도 무한정 지속되는 전쟁을 해야하는데,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제 어디로 자녀를 유학보낼 것인가. 우리의 박찬호와 박세리가 서야할 땅이 미국말고 어디에 있는가. 툭하면 떠나는 교육이민을 이제 미국 말고 어디로 가랴.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를 살면서 무역입국, 기술입국, 정보입국을 미국없이 어디서 상대할 나라가 있는가. 세계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맏형이 휘청거리면 그 좋은 시절은 가고 만다.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방위의 총본부 펜타곤이 처참하게 박살났는데 자유민주주의를 의지하고 신뢰하는 수많은 동생 나라들은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

제2바벨탑의 붕괴는 새 국제질서의 개연성을 의미하지만 미국이 남이가, 이것이 문제이다. 장해광(계명대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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