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석쇠기'겁난다

민족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둔 서민가정마다 한숨소리가 높다.오랜 경제적 어려움에 지친 주부들은 바닥난 가계통장과 오른 물가를 원망하며 친지간 선물은 고사하고 추석상 차릴 일이 캄캄하다는 비명이고, 귀성을 포기해야겠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회사원인 남편, 두 자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주부 김모(40·대구시 동구 방촌동)씨. 김씨는 지난해 추석에는 시부모·친정 양가 부모님 용돈 40만원, 차례비용 20만원, 자녀 및 조카선물 20만원 등 80만원을 지출했다. 올해는 꿈같은 얘기다. 남편이 상여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1천만원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계를 꾸려온 터라 친정 부모 용돈, 자녀와 조카 선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차례비용도 줄여 모두 30만원으로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공무원 남편을 둔 주부 김모(33·서구 내당동)씨도 지난해 추석때 시댁·친정 양가 부모 용돈으로 40만원을 지출했지만 올해는 간단한 선물로 대체할 예정이다. 지난해 삼형제가 5만원씩 큰 집에 보탠 차례비용도 올해는 동서들과 상의해 3만원만 내기로 했고, 친척이나 조카들의 선물은 뺐다.

23일 주부 박모(32·동구 방촌동)씨는 시부모에게 보낼 제수용품으로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고사리와 도라지 각 2봉지, 무 2개, 고구마 1㎏, 시금치 1단, 정육 2㎏, 닭 1마리, 황태포 2마리, 오징어 5마리, 상어산적 2㎏, 조기 10마리 등을 16만원에 구입했다. 지난해보다 4만원이 더 들었다. 박씨는 "장보기가 두렵다"고 했다.이같은 분위기를 반영, E마트 만촌점은 일요일인 23일 매출액이 7억여원으로 추석기간 예상 매출액 8억원보다 1억원 정도 적었으며, 까르푸 동촌점도 일요일 매출액이 4억5천만원으로 지난해 추석 이맘때보다 15% 감소했다는 것이다.

칠성·서문시장 등 재래시장 역시 "단대목인데도 매기가 일지 않고 있다"며 "이맘때면 보이던 교통정리 경찰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쪼들리는 가계살림 때문에 추석쇠기를 포기하는 가정도 적잖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지난해말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빚 보증까지 떠안고 있는 주부 최모(36·수성구 황금동)씨. 석달전부터 일당 2만원의 파출부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안동에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올 추석에는 찾아뵙지 못할 형편이다. 최씨는 "시어머님과 고향 친지들께 안부전화만 해야할 처지"라며 "요즘같아선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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