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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신봉 회교 '와하비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오사마 빈 라덴이 신봉하는 '와하비즘'(Wahhabism)은 '이슬람의 청교도'라고 불리는 이슬람 교파의 하나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원해 사우디 아라비아의 오일 머니와 함께 중앙 아시아로 확산됐다.

와하비즘은 창설자인 모하마드 빈 압둘 와하브(1703~1792)의 이름을 딴 것으로,그는 이슬람의 종교적 의무를 엄격히 준수할 것을 촉구한 수니파(派) 개혁가였다.

그의 이슬람에 대한 청교도적 해석은 지난 1745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우드 왕가 창시자 모하마드 이븐 사우드 국왕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와하브는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이교도로 선언했고, 교리를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

이른바 '애쉬-샤익흐 가족'으로 불리는 그의 후계자들은 현재도 사우디 아라비아 왕족의 협조아래 종교 학교들을 관할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이슬람 정치학 분야 전문가인 올리버 로이는 탈레반에 대한 사우디 아라비아 및 와하비즘의 영향은 지난 1980년대에 시작된 것이라고소개하고, "탈레반 학교망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재정지원에 의해 파키스탄에서 발전해 왔으며 사우디는 교사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탈레반의 와하비즘화(化)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는 정통 와하비즘과는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 대륙에 뿌리를 둔 탈레반은 결코 형상이나 이미지와는 싸우지 않았지만 아프간 탈레반은 지난 3월 바미얀 지방의 석불들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탈레반이 해석하는 와하비즘은 오늘날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실행되는 것보다 훨씬 엄격하다. 아프간 탈레반 군정은 여성들의 대중앞 출현을 완전 차단하고 있으며음악과 TV, 영화 상연을 금하고 있다. 도덕적 공격에 대해서는 사형, 투석, 인체 절단, 채찍질로 벌한다.

미국과 탈레반의 공동의 적이었던 소련이 지난 1980년대말 철수했을 때 아프간에 탈레반이라는 반미(反美) 강경 정권이 등장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역설적이지만사우디 아라비아의 재원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미국의 훈련과 자금이었다.

미국이 지난 9.11 참사의 배후로 꼽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지난 1994년부터아프가니스탄을 본거지로 삼았으며, 빈 라덴의 아프간 은거는 아프간의 고립을 가중시켜 현재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곳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두곳 뿐이다.

아랍 에미리트는 아프간 정권이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하자 지난 22일 아프간과의 외교관계를 거부했으며, 리야드는 같은 이유로 지난 1998년 일찌감치 아프간 탈레반과의 관계를 격하했다.

러시아 연방내 다게스탄 공화국은 지난 1999년 9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기치로 발생한 두건의 정권 전복기도와 관련해 모든 와하비즘 조직을 불법화했으며, 체첸의 친(親) 러시아계 이슬람 성직자인 아흐메드 샤마이예프는 지난 4월 사우디 아라비아가 젊은이들에게 교육시킴으로써 체첸과 코카서스 지방을 와하비즘화(化)하고있다고 비난했다.

카타르 역시 와하비즘을 신봉하지만 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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