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래된 우스갯소리. 한 남자가 친구에게 물었다. 라면봉지에 적힌 '신(辛)'자를 어떻게 읽느냐고. 대답은 "행(幸)자다"라는 거침없는 큰소리였다. 다시 생각해야 되겠다고 물은 친구가 권하자 대답한 친구는 "왕편(玉篇) 달라"고 했다나. 우스갯소리는 그렇다치고 국회의원이 많이 쓰이는 한자의 음(音)을 잘못읽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일이 더러 있었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회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이재민(罹災民)을 '나재민'으로 줄대어 읽어 자료 등을 챙긴 비서가 당황했었다고 한다.
한자를 읽는 것이 이럴진대 쓰는 수준은 더욱 형편이 없다. 대학졸업자의 절반이상이 아버지 이름을 제대로 적지 못하고, 어머니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72%나 된다고 한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한자문맹'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 제3사관학교의 김종환 교수가 전국 120개 대학교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4급 한자능력 검정시험' 결과는 이처럼 충격적이다. 100점 만점에 평균 점수가 21.3점으로 김 교수가 4년전에도 실시한 같은 급수의 평균점수 29.5점에 비교할 때 8.2점이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한자의 음과 훈(訓)을 아는 대졸자나 대학생들이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서울 법대생들이 고시준비를 할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한자(漢字) 공부라고 서울대 부총장이 올해 초 토로할 정도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법대생들이 이런 수준일정도로 우리의 한자실력은 형편이 없는가 보다. 기를 쓰고 영어는 배우려하면서도 한자에 대해서는 거들떠도 안보는 게 대학사회의 현실이다. 쇄출(刷出) 같은 한자는 읽을 엄두도 못내고,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쓰는 대학생도 한 학과에 3, 4명이 된다는 경북지역대학 교수의 한탄도 있다. 우려할 일은 이런 지경인데도 이를 당연하게 여겨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맹(漢盲)대학생'의 원인은 공교육의 한자교육 부실에 있다. 29년전인 72년에 정한 중고교 교육용 기초한자 1천800자의 절반정도만 익히도록 하면 아버지, 어머니 이름 정도는 적을 수가 있을 것이다. 영어가 '세계어'이듯 한자도 '세계문자'다. 세계인구 20억명이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다. 우리말의 어휘 70%가 한자어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전통문화의 이해와 계승차원에서도 익혀야할 한자가 아닌가.
최종진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