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헌영의 세상읽기-탈레반 정권과 세계경제

아프가니스탄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언론매체들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이례적인 '국론일치'를 보이고 있다. 하나는 이번 뉴욕 국제무역센터에 대한 항공기 테러사건의 배후가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일 것이라는 점과, 또 하나는 미국 군사행동의 목적이 국제사회에서 테러를 뿌리뽑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역사상 어떤 군사행동도 도덕적이거나 이념적인 동기만으로 설명되는 경우는 없었다. 중세 십자군 원정도 기독교 이념의 옹호에 못지 않게 지중해 무역으로 축적된 중동 이슬람 국가의 부를 노린 실리적 목적이 있었듯이 21세기 십자군의 원정이 될 이번 테러 소탕전도 경제적인 관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테러에 대한 '도덕적 응징'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국제정치의 현실적인 '지정학적 측면'과 우리 민족의 '국익'이라는 측면에서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을까.

카터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21세기 세계 패권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지로 중앙아시아를 손꼽은 바 있다. 구소련령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에는 20조㎥에 가까운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데, 이는 미국과 멕시코의 매장량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양이다. 이중 10조㎥ 이상의 천연가스가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 묻혀있는데, 두 나라는 모두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곳에서 생산될 막대한 천연가스를 운송하는 길은 네가지 밖에 없다. 북서쪽으로 러시아를 통하는 길과, 동쪽으로 중국을 통하는 길, 남쪽으로는 이란을 거치거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통해 인도양으로 나가는 길이다. 지구의 자원에 유난히 민감한 미국으로서는 러시아나 중국, 또 20년 가까이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는 이란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중앙아시아의 천연가스 자원에 접근하고자 했는데, 손쉬운 대안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뚫는 길로 좁혀진다. 러시아가 체첸을 그처럼 무리하게 다루는 데도 이런 속사정이 없지 않을 것이다. 미국계 민간자본은 지난 96년 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을 거치는 파이프라인 건설 컨소시엄에 참여했으나, 탈레반 정권이 반미적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계약이 무산된 바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미국 조야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킬 필요성이 몇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작년 여름에 나온 헤리티지 재단의 보고서다.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적 성향의 대외 강경론을 주조로 하는 정책연구소로, 공화당 정권의 많은 정책입안자들이 이 곳에서 배출되고 있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연구기관에서 작년에 입안된 보고서에는 탈레반 정권을 고립시키고 경제제재를 강화할 것과, 탈레반 정권에 저항하는 반군세력들을 적극 지원할 것, 탈레반 정권에 대해 암묵적인 지지를 하고 있는 파키스탄에 대해서도 제재에 동참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것 등의 건의가 담겨 있다.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발빠른 움직임은 차제에 이러한 숙원사업을 달성하려는 일석이조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있는 듯 하다. 표면상 미국은 빈 라덴의 인도만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성명의 행간만 풀이해 봐도 의도는 명백하다. "테러범 개인 뿐 아니라 테러 자체를 근절하는 것", 그것은 결국 빈 라덴의 신병을 둘러싸고 있던 탈레반 정권의 근본적인 변화 내지는 전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표면상 국민 전체부터 지도층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복수심에 들끓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이번 테러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21세기 국제정세의 새판을 짜기 위한 냉철한 계산과 전략적 목표의 설정을 놓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아직까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원한을 살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다. 미국의 국익을 관철시키게 될 앞으로의 군사행동에서 '세계 정의'라는 기치만을 액면 그대로 믿을 게 아니라 중앙아시아 일대가 지닌 경제적인 고려까지 염두에 둔 실리 외교가 앞서야 할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 대륙을 거쳐 북한-부산의 파이프라인도 가능한 우리로서는 어느쪽이 이익일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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