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테마별 접근-가족력과 유전병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가 빠뜨리지 않고 묻는 것이 있다. 가족력이다. 조부모나 외조부모, 부모, 형제 자매 가운데 똑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의사들은 왜 환자 질환도 아닌 환자 가족의 질병 경력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일까? 가족력이 그 사람의 질병을 진단하는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환경과 유전의 만남='알레르기 체질'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알레르기는 면역반응의 일종으로 특정한 물질(항원)에 신체가 노출되었을 때 과민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물질이 특정인에게는 피부염이나 기침 재채기 천식 등의 이상반응을 일으킨다.

알레르기는 유전적인 요인이 상당히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가 알레르기 질환을 갖고 있으면 아이의 80%에서 알레르기성 질환이 생긴다. 부모 가운데 한쪽만 알레르기 질환을 갖고 있으면 그 확률이 60%다.

알레르기라는 유전적 요인(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그러나 정확한 진단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증상이 좋아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에 노출되는 것도 가급적 줄여야 한다.

◇암도 유전일까?=암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암발생 위험도와 유전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암이 가족적으로 발생할 경우 유전적인 원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비슷한 생활 양식 때문인지는 구별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동양인은 하와이 원주민에 비해 위암 발병률이 높다. 이들이 하와이로 이주한 후 위암 발생은 하와이 원주민의 발병률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동양인은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의 빈도가 낮지만 하와이 원주민은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하와이로 이주한 동양인에서 이들 암의 발생이 현저히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암은 유전보다는 생활환경 또는 생활 양식이 중요한 원인이란 얘기다.

◇뚱뚱한 것도 유전?="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체중이 불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비만이 많이 먹고 활동량이 적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계명대 동산병원 서영성 교수는 최근 비만한 우리나라 성인 93명과 건강한 정상 성인 99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비만인의 73%, 정상인의 50%가 기초대사량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었다. 또 비만인의 11%, 정상인의 7%에서 지방세포분화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과 환경적 요인이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병 등에서 얼마나 중요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만을 유발하는 생활습관 환경 등에 노출되었을 때 유전적으로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훨씬 비만환자가 되기 쉬운 것은 분명하다.

◇가족력과 유전병은 다른 것=질병에 가족력이 있다고 하면 운명의 사슬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조상을 원망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그러나 유전병과 가족력은 다른 것이다. 유전병은 혈우병이나 색맹처럼 유전에 의해 생기는 병이다. 부모가 이 병을 갖고 있거나 관련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자식대에 반드시 나타난다.

가족력이 있다는 것은 그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지 꼭 그 병에 걸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력은 전적으로 유전에 의한 것이 아니다. 비슷한 생활습관도 큰 요인이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해서 아들도 반드시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알레르기 가족력이 있다면 자녀들에게서 알레르기 질환이 나타나지 않는지 잘 관찰하고 적절한 치료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부모 가운데 암환자가 있었다면 암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지침을 따르고 정기적인 검진을 해야 한다.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 관련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식사 운동 생활습관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글: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도움말:김명성교수(계명대 동산병원 소아과) 이경희교수(영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서영성교수(계명대 동산병원 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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