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나눔의 이웃 공동체

1960년대 초반. 일명 '보릿고개'라는 춘궁기 시절의 이야기다. 너나 할 것 없이 끼니를 밥먹듯이 굶던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저녁이면 장터로 가신 어머니가맛있는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오실 것이란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었다. 어머니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풍선껌과 연근, 호떡, 군고구마 등을 장바구니에 담아 오셨었다.그리고 술도가에서 술을 빚고 남은 '술찌끼'를 자주 사오셨다. 그것을 물에 풀어 사카린을 타서 끓이면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이 되었는데, 온 가족이 흐릿한 호롱불아래 밥상에 둘러앉아 한 사발씩 훌훌 마시고 나면, 배도 불렀지만 얼큰함과 함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던 날들이 생각난다. 비단 우리 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마음만은 넉넉했었다. 마을주민들이 함께 염려하고 고통을 나누던 그 격동기에는 절대적 빈곤이 문제였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가르쳤고, 가정에선 상처받은 가족들에게 위로와 치료의 기능도 있었다. 이웃의 애.경사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고락을 함께 나누었고, 산모가 출산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 시절에는 무형의 '이웃공동체'라는 의식이 그렇게 살아 있었다.

며칠있으면 한가위다. 이 시간 어떤 아이가 밥을 굶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실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혼으로 가족해체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실 그들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올 한가위는 무너져가는 이웃공동체 속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해체되고 있는 이웃사회, 개인주의화. 우리는 이것을 언제까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사회변동 현상으로서만 이해해야 하는 걸까.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경쟁적인 삶속에서 탈피하여, '이웃공동체'라는 더불어 사는 삶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한가위 보름달에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싶다.

목사.구미가족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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