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젊은세대 한가위 풍속 달라진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온 가족이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게 추석 연휴의 '일상'이라고 할까.

그러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추석을 색다르고 편하게, 휴가처럼 즐기려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여성부와 여성 및 시민단체들은 부계(父系) 중심 관행의 차례와 제사문화의 변화를 찾기 위해 명절문화개선운동이나 '대안(代案)명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차례상은 대행업체에=차례상에 올릴 제수음식을 장만하려면 장보기부터 까다로운 조리까지 하루 종일 부엌일을 해야 한다. 음식 가짓수는 좀 많은가.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차례상을 아예 대행업체에 맡기는 가정이 의외로 많다. 차례음식에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정성도 남의 손을 빌리고 있는 셈이다. 대행업체들은 차례를 올리기 1시간 전에 차례상에 올릴 모든 음식을 배달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지방까지 대신 써 준다. 이들 업체는 4, 5년 전에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가 최근들어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 제사음식까지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불과 몇 년만에 깨지고 있는 것이다.가격은 음식 30종에 10명이 먹을 수 있는 차례상의 경우 18만원 안팎.

대행업체인 '제삿날' 대표 이창섭(51)씨는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비슷해 맞벌이 가정은 물론 40, 50대 주부들도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추석을 즐기자=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엔조이족(族)'이 늘고 있다. 주로 차남 가정인 전문직 종사자나 미혼자들로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고 가족들에게 미리 여행 계획을 공표하고 연휴 때 바람같이 사라진다.

전문의인 김모(40·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씨는 "여름 휴가를 갖지 못했던터라 이번 추석엔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에 여행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보익 코오롱고속관광 대구지점장은 "상당수 해외 여행 상품이 동이났다"며 "대구에서 추석 연휴 때 제주도나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2천여명쯤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차례에 제관(祭官)이 별로 없다=예전에는 차례나 제사 때 제관이 많아 작은 평수의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제사를 번거롭게 여겨 명절 차례에도 잘 다니지 않거나 아예 제일 큰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 다음 집부터는 제관을 나눠 차례를 빨리 끝내 버린다. 차례를 최소화해 명절 오후부터는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철(35·자영업·대구시 북구 칠성동)씨는 "명절 차례가 대구에서만도 6건이나 돼 다 지내고 나면 초저녁이 되곤한다"며 "이번 추석부터는 큰 집 차례만 함께 지내고 나머지 차례는 가족끼리만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안명절'을 만들자=여성부와 시민단체들은 '명절 연휴, 아내도 쉴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명절문화 개선운동을 펴고 있다. 명절은 주부들에게 '일하는 날'로 여겨져 왔다. 또 '명절 증후군'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부계 중심의 차례문화는 주부들에게 적지않은 부담을 안겨주기도 했다. 또한 남자들 역시 이집 저집 차례에 참석하느라 피곤한 명절이 되기 일쑤였다. 명절문화 개선운동은 이런 명절의 부정적인 면을 개선해 온가족이 즐겁게 명절을 보낼 수 있는 대안을 찾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주요 열차역이나 고속터미널 등지에서 '남자도 명절을 바꾸고 싶다'는 소책자를 배포하며 귀성객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지난 11일 서울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21세기 명절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란 공개토론회에서 국사편찬위원회 이순구 편사연구사는 "차례란 본래 차를 올린다는 말에서 유래할만큼 약식의 제사를 뜻하는 것"이라며 "조선 중기까지도 제사를 아들, 딸, 사위들이 돌아가며 분담해 치르는 윤회봉사와 분할봉사 등의 전통이 있었으나 17세기 말 이후 장자 중심의 제사상속 관행이 일반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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