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김 모(61)씨는 외견상으로는 과거 전국에서 내로라 했던 대구의 명문 A중학교와 A고등학교 출신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A 중학교와 B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김씨는 A 고등학교의 모임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술을 마시고 친분을 다진다. 가까운 이들은 그가 A 고등학교 출신이 아님을 알지만 굳이 따지려 들지 않는다. 그가 내심찜찜한 마음을 누르고 이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는 사업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각계의 실력자 중 상당수가 A중고등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영덕 출신의 기업가 박 모(59)씨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구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꼽힌다. 평범한 집안 출신에 평범한 학력을 가진 그가 대구에서 성공하기까지 겪은 수모는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 실력자들의 모임은 모조리 찾아다녔고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무릎을 꿇고 술을 따랐고 저녁마다 폭탄주를 마셔가며 '인간관계'를 도모해야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덕에 그는 꽤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런 연줄 만들기에 시간을 빼앗긴 탓에 제품에 최고의 정성을 쏟지는 못했다.
이같은 학연, 지연 등 인맥 중시 풍조는 비단 대구에 한한 것만은 아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특히 대구·경북지역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일 경우 '고향'이나 '출신학교' '종교' 등 이런저런 연줄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연줄이 닿아야 비로소 마음을 열어놓는다. 수십년 대구에서살아온 타지출신 사람들이 여전히 아웃사이더의 소외감을 느낀다는 말을 되새겨 봐야할 터이다. 물론 미국 등 선진국 사람들도 지연이나 학연을 소중히 여기지만 어디까지나 공사를 구별한다. 우리처럼 매사 연줄을 들먹거리지는 않는다.
서울의 벤처기업 넥스트에는 같은 대학 출신이거나 고향 선·후배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들은 오직 개인의 실력으로 뭉쳤다. 이 회사가 성공하리라는 것은 굳이 미래를기다려 볼 필요가 없을 듯하다.
대구가 '끼리끼리' 문화의 '촌티'를 벗고 국제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어맨 연줄부터 걷어내야할 판이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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