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서진산 태실(1)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성군으로 칭송을 받은 조선조 4대 세종대왕 왕자태실이 자리하고 있다. 태실이 위치한 태봉은 뒤쪽에 해발 742m인 서진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들판에 홀로 우뚝 솟은 반구형의 형태로 풍수지리학상 '돌혈(突穴)'에 속하는 명당이라는 것.현재 태봉에 모두 19기의 태실이 두줄로 안장돼 있고 윗줄에는 진양대군(훗날 세조)안평대군 등 대군 7왕자 및 세손 단종의 태실과 태실비가 가지런히 있고 아랫줄에는 화의군, 한남군 등 11기의 태실과 태실비가 있다. 한곳에 이처럼 많은 태실이 묻힌 곳은 전국에서 이곳밖에 없다.
사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있어 태(胎)를 봉안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김유신(金庾信)의 장태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고려 왕실에서 태 봉안식을 시작한 후 조선시대까지 그 맥락을 이어왔다.조선시대 왕실에서 왕족의 태를 전국 유명 명당을 찾아 쓴 이유는 먼저 풍수지리의 핵심 이론인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에 따른 것. 즉 태를 좋은 땅에 묻어 좋은 기를 받으면 그 태의 주인이 무병장수하여 무궁무진한 계승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또 왕실에서 기존 사대부나 일반 백성들의 명당을 빼앗아 태실을 만듬으로써 왕조에 위협적인 인물을배출할 수 있는 요인을 없앤다는 것으로 실제로 인촌리 태실은 이장경(李長庚)의 묘를 이장하고 태를 안치했다.이밖에 왕릉이 도읍지 100리 안밖에 모셔진데 반해 전국 도처의 명당에 태실이 조성된데는 왕조의 은택을 백성에게도 누리게 한다는 일종의 통치이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그러나 이같은 명당에 대한 풍수지리학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인촌리 태실에 모셔진 세종대왕의 왕자들은 계유정난과 세조의 왕위찬탈과정에서 형제.숙질간의 골육상잔으로 명당의 수명이 3대를 간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당대도 버티지 못하는 역사적 아이러니도 제공, 진정 명당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하고 있다.
성주.박용우기자ywpar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