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가스, 마사지 업소... 대구시가 문화의 명소로 내세우는 중구 봉산문화거리에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업소들이다. 화랑들이 이곳 저곳 가끔 눈에 뛸 뿐, 여기에서 문화의 내음을 맡기란 쉽지 않다.
거리가 깨끗하지 않고 도로도 좁다. 행인들은 교행하는 차를 피하느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인도(人道)의 노상적치물로 인해 걷기에 고달프다. 도로 입구의 장승에 '봉산문화거리'라는 간판만 붙여 놓았을뿐, 외부 환경은 문화와 전혀 연관이 없는 듯 하다.
이곳 화랑들로 구성된 봉산문화협회(회장 정재명 예술마당 솔 대표)는 13일부터 22일까지 '제9회 봉산미술제'를 연다. 봉산문화거리의 발전과 시민문화 공간으로서의 정착을 위해 매년 가을에 열리는 큰 행사다. 그러나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축제도 일회성 행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행사때에는 시민들이 좀 몰려들다가 행사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썰렁한' 거리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미술평론가 권원순(62.계명문화대 교수)씨는 "문화거리라면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쳐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시민들을 모을 수 있는 유인책, 거리환경 정비, 화랑 업주들의 노력 등이 모아져야 명실상부한 문화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선 명소화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대구시와 중구청의 행정적 뒷받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많다.
한 화랑업주는 "금전적인 지원은 어렵다 하더라도, 차량의 일방통행이나 업소허가 제한 등에 대한 건의를 귀에 따갑게 해왔지만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실제로 행정기관들은 행사때에 후원비나몇푼 내놓을 뿐, 봉산문화거리에 대한 장기적인 발전계획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고미술상을 입주시키고 봉산문화거리와 향교까지 연결하자는 얘기는 오가지만 어려운 구청 살림으로선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이곳에 위치한 20여개 화랑 업주들의 인식도 문제다. 컬렉터만 관리해왔을뿐, 미술 대중화와 문화거리 활성화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김영숙(35.수성구 지산동)씨는 "봉산동 화랑을 찾았다가 화랑 주인이나 직원들의 무관심한 눈길에 머쓱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면서 "일년에 한 두차례 축제를 연다고 미술 대중화가 되겠느냐"며 화랑의 서비스 부재를 탓했다.
화랑업주들은 몇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화랑이 유지하기도 힘든 형편이라 공익적인 문제에 관심을 돌리기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봉산문화거리에 대한 희망섞인 기대를 하는 이들도 있다.
내년 3월 착공되는 문화회관(2003년말 완공예정)이 시민들의 명소로 자리잡고, 행정적인 지원만 보태진다면 문화거리 활성화는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것. 정재명(55) 봉산문화협회장은 "시민들의 문화 마인드 고양과 함께 봉산문화거리의 위치, 근접성, 역사성 등 장점을 살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봉산문화거리에 활기가 넘치고 봉산미술제가 진정한 시민축제로 거듭나려면 모두의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제9회 봉산미술제'를 준비하고 있는 정재명 봉산문화협회장(55)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멋진 축제가 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미술경기가 최악의 상태에 있는데다 경비문제 등 제반여건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적은 비용으로 내실있는 행사를 치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들의 문화 마인드를 한단계 끌어올릴수 있는 행사라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단시간에 이루기 힘든 목표지만, 매년 축제를 통해 시민들에게 미술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회장은 지난해 축제기간중에 일어난 설치미술작품 훼손사건 같은 비슷한 일이 재발되지 않길 바라면서 "일부 시민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설치미술제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이 출품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캐릭터 돌거북제작, 야외설치전, 특별강연회 등 볼거리가 많다는 그는 "어려운 여건의 화랑들이 힘을 모아 여는 행사인 만큼 관심을 가져달라"면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부탁했다.
박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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