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석 "냉랭했다"

2001년 추석은 그 어느 한가위보다 썰렁했다.

안동에선 자녀들의 귀성 포기로 노인들만 남아 우울하게 차례를 올리는 모습이 늘었다. 녹전면 신평리 ㄱ(64)씨는 부평의 큰아들이 새시 공장 부도로 귀성을 못하자 "조상 뵐면목이 없다"며 차례와 성묘를 다음 기회로 미뤘다. 상주시청은 시가지 4개 학교 운동장을 임시 주차장으로 개방했지만 주차 차량은 많잖았다.

영양 청기면 청기리 ㅇ(72)씨는 대구.부산의 아들 둘이 실직.연장근무 등으로 귀성을 포기해 이웃이 마련해 준 제수로 혼자 차례를 지냈다. 명절 때마다 영양지역 곳곳을 누비던공단 근로자 수송 버스들 역시 거의 없어져 선물 꾸러미 든 단체 귀성객도 보기 힘들었다.의성엔 비까지 내려 분위기를 더 음울하게 했다. 한복 차림의 귀성객은 구경하기 힘들었고, 추석 당일 오후부터 서둘러 일터로 되돌아 가는 풍경이 나타났다. 문경의 귀성객들은 "부모님께 용돈마저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추석"이라고 했으며, 이들 역시 일찌감치 되돌아 가느라 추석날 오전부터 길이 붐볐다.

가게들도 너나 없이 '흉년'이라고 했다. 술.과일.생활품 등 선물 세트를 대량 준비한 문경지역 상인들은 "사과보다 훨씬 싼 배가 많이 팔리고 술은 세트보다는 병 단위로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정육점들은 폭등한 소 값 탓에 소고기 선물세트를 거의 팔지 못했다. 영양시장 어물전 김인숙(54)씨는 "대목장 손님도 평일 수준에 그쳤다"고 한숨지었다.경주지역 호텔.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년 추석보다 경기가 10∼30%나 못해졌으며, 놀이동산인 '경주월드' 추석날 입장객은 작년 절반 수준(2천500여명)에 불과했다. 이대우(45)씨가족은 "전과 달리 콘도에서 제수를 못구해 술 한잔만 올리는 것으로 차례를 간소화했다"고 했다. 호텔은 현대를 제외하곤 투숙률이 많이 떨어졌고, 보문의 3개 콘도 이용률도 평균 80%에 그쳤다. 특히 하일라 콘도에선 추석 당일 예약 취소가 많아 방이 남아 돌았다.

반면 비용 부담이 적은 휴양림들은 인기를 끌어, 청도 '운문산 휴양림'에는 추석을 전후해 휴양객들이 초만원을 이뤘고, 연휴 마지막 날인 3일에도 예약률이 50%에 달했다. 유남재(40) 주임은 "몇년 전부터 상당수 사람들이 휴양림에서 차례를 간단히 지낸 뒤 휴식하며 그런 단골도 있다"고 했다. 청송휴양림(부남면)도 역내 시설 중 최고 인기를 끌었다.

어려움은 불우시설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영천희망원은 올해 도움의 손길이 작년의 5분의 1 수준인 10건밖에 안됐고, 그것도 관공서에서 과자.라면 등을 전달한 것이 주류일 뿐 일반인 발길은 끊기다시피 했다고 했다. 이곳 출신으로 사회에 진출한 선배 20여명이 찾아 와 아이들과 함께 컴퓨터겷汐?등을 하며 놀아준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문경에서도 시청의 행사 외에는 민간 이웃돕기가 20여건에 그쳐 예년의 30%를 밑돌았다. 농촌 고향집에 모여 앉은 가족들은 추석의 흥겨움보다는 너나 없이 쌀값.논값 폭락 등 앞날을 걱정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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