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썰렁해도 역시 추석은 추석. 곳곳에서 동창회가 벌어졌고, 출향인 맞이 잔치들도 잇따랐다.
◇추석은 동창회 찬스 = 울진의 추석은 추석 자체보다도 동창회 시즌을 연상케 했다. 추석 전날 저녁 평해읍 식당가에서 열린 동창회 모임은 후포고 35회 '가람회' 등 줄잡아 10개나 됐다.
창원에서 3시간 30여분을 달려 평해읍 월송리 고향집에 도착했던 황형택(34)씨는 추석 전날 저녁 6시30분쯤 부모님께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집을 나섰다. 마을 입구 한 식당에서 열리는 초교 동기 모임인 '월우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운 얼굴들을 만난 황씨 일행은 밤이 새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등 직장생활 스트레스를 모처럼 풀었다.
같은 날 오전엔 기성면 기성중 교정에서는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동문회가 열렸다. 추석 다음날(2일)엔 북면 소곡초교 총동창회, 근남면 제동중 동문 체육대회, 평해초교 동창 기수별 체육대회가 이어졌다. 추석 기간 군내 동창 모임은 무려 100여건에 이르렀고, 거리는 온통 이를 알리는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평해초교 59회 동기회장 정운용(41)씨는 "누구나 명절엔 귀향하기 때문에 이 때를 활용해 동창회를 여는 게 일반화됐다"고 했다. 작년부터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황윤호(35.서울 서초3동)씨는 "빈부차나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이 동창회의 좋은 점"이라고 했다.
◇마을 축제, 그러나 기분 잡친 일들 = 추석이었던 1일 문경 가은초교에서는 가은JC가 주최한 한가위 노래자랑 대회가 열려 읍민들과 출향인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다음날엔 주흘축제가 문경읍개발위 주최로 문경읍내서 열려 출향인들도 함께 정을 나눴다.
추석 전날엔 청송초교에서 지역 '송심회' 주최 한가위 선후배 체육대회가 출향인사 등 1천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고, 같은 날 진보초교에서는 진보청년연합 주최 친선 축구대회가 개최됐다. 두 행사에는 청송군수 출마 희망자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귀성객들은 정치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고향에 와 보니 지방선거로 패가 갈려 옛날 고향이 아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또 일부 귀성객들은 지난 설 귀성 때 끊긴 교통 범칙금 딱지 이야기로 불쾌해 하기도 했다. "경제난 스트레스를 모처럼 고향에서 풀고 가니 딱지가 뒤따라와 오랜만의 귀향 기분까지 망치더라"는 것. 청송에선 이번 추석에도 지난 29~30일 고향을 찾았다가 읍면 소재지 상가에서 선물을 사느라 차를 세웠다가 같은 경우를 당했다며 불쾌해 하는 사람이 적잖았다.
◇특수는 다른 곳에서 = 전에는 추석에 친지들은 큰댁으로, 친구들은 친구집으로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으나 요즘은 읍면 소재지 노래방.가요주점이 모임 장소로 반짝 특수를 누렸다. 영주지역 면 소재지 한 가요방 주인은 "연휴 기간 빈 방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지역 특산품을 대량 사 가는 귀성객도 적잖아 현지 농민이나 상인들도 즐거워 했다. 영주 풍기인삼.단산포도 등 값이 5만원 미만인 특산품 매장에는 일터로 되돌아 가 주려는 선물을 장만하려는 귀성객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포항 죽도 어시장 상인들은 이번 추석을 기해 콜레라 파동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했으나 기대 이하였다고 아쉬워 했다. 귀성객들이 여전히 발길을 돌렸다는 것.
◇일반 가정의 추석 풍경 = 추석날 오전엔 상당수 지역에서 비가 내리자, 영양 입암면 김모(68)씨 집에서는 일회용 도시락에 포장된 제수를 그대로 차례상에 올리기도 했다.
또 가족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 연고가 없는 귀성객들은 비 때문에 산소를 찾지 못하게 된 뒤 여관방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서울에서 왔던 이준우(42)씨는 "여관방에서 변변한 상(床)도 없이 차례를 지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은 벌초 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가족묘원 조성을 활발히 논의했다. 영양 입암면 산해리 임성모(67)씨는 "우리 세대까지 죽고 나면 산을 찾아 성묘할 사람이 없어질지 모른다"며, "죽기 전에 이장해서라도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가족묘원을 만들어 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2년 전부터 농지 수백평을 사들여 조상 묘소 6기를 이장했다.
영양읍 서부리 이수천(74)씨도 자녀들과 의논해 가족묘원을 만들었고, 진입로도 콘크리트로 포장했다.
한편 울릉에는 추석날까지 78.4mm의 단비가 내려 지난달 16일에 다시 시작됐던 제한급수가 15일만에 해제됐다. 울릉 주둔 해군 118 조기경보전대 장병들은 추석날에도 부대 인근 30여기의 무연고 묘지를 정성껏 단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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