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40.대구시 북구 침산동)씨는 초교 4학년인 큰딸은 '하늘'이라 이름지었지만 아들은 한문 이름인 원석(3)으로 했다. 큰딸의 한글 이름은 부르기도 듣기도 좋고, 우리글을 사랑하는 의미도 담긴 것 같아 손수 지었지만 갈수록 놀림의 대상이 되고, 이를 선호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워 아들은 한문 이름을 택했다고 했다.
나라, 하늘, 슬기, 한빛, 고은, 이슬...한때 유행했던 한글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반면 본명외에 영어식 별칭을 사용하는 어린이들은 크게 늘고 있다.
대구지법 가정지원에 따르면 초.중교 입학시즌에 한글 이름을 한문으로 바꾸는 학생들이 한달 평균 1명 꼴이지만 거꾸로 한글로 개명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대구시 각 구청에도 한글 이름으로 호적을 등록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 달서구청의 경우 한글 이름 등록자가 3,4년전의 절반수준인 2-3%정도에 그치고 있다.
대구시내 삼덕초교의 경우 6학년 172명 중 한글 이름을 가진 학생은 6명인 반면 277명인 1, 2학년 중엔 1명이 고작이다.
서대구초교 박정옥(34.여)교사는 "3,4년 전만해도 1학년 한반에 한글 이름을 가진 학생이 2,3명은 됐지만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들다"며 "예쁘고 정겨운 한글이름이 점점 사라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영어학원, 유치원, 놀이방,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들 사이에는 영어식 이름을 별도로 갖는게 유행이다. 써니, 스티브, 존, 잭, 톰, 데이빗 등 영어식 이름은 어린이 교육시설의 영어시간용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일반생활 속에서도 적잖게 불려지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 사이에는 파이리, 리저드, 리자몽, 꼬렛, 레트라 등 외국 만화 캐릭터를 별명으로 삼는 풍조도 많아졌다.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절반 이상의 어린이들이 외국어 별명을 가지고 있고, 서로 한글 이름이나 별명을 부르는 경우는 보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대구대 국어교육과 최태엽(53) 교수는 "세계화, 국제화를 이유로 한글 이름을 불편하다고 생각해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일제시대 강제적인 창씨 개명 못지 않은 심각한 언어와 문화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이호준기자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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