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산맥을 가다-(2)카프카스-영광의 엘브루즈

◈카프카스-(1)영광의 엘브루즈

그들의 눈에는 대륙이 담겨 있었다. 엘브루즈 여신이 빚어낸 카프카스 산군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사방으로 너울져나갔다. 구름을 뚫고 홀연 치솟아 오른 봉우리들, 광대한 설원과 초원구릉, 원시림에 둘러싸인 호젓한 산마을.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것들이 그들의 발 아래 있었다.

지난 7월 중순 세계 7개 대산맥을 향해 대장정에 오른 '2001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 그중 유럽 카프카스탐사대(단장 이병완.대장 임형칠) 대원 12명은 같은 달 28일 오전 11시50분 유럽 최고봉이자 카프카스산맥의 제왕인 엘브루즈(Elbrus:해발 5,642m) 정상에 올랐다. 만년설 뒤덮인 산정에서 대원들은 가쁜 숨을 고르며 대등한 적수와 겨루고 난 뒤의 기쁨을 나눠 마셨다. 카프카스의 연봉들은 신화 속 영웅들의 무용담을 속삭이고 있었다. 제우스에 거역해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심장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은 곳. 이아손이 아르고호를 타고 세상끝을 지나 마법사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황금빛 양털을 찾은 곳이 바로 여기라고. 첫 해외원정에서 등정에 성공한 대학생 대원들은 감격의 탄성을 질러댔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민보디까지 12시간이 넘는 비행, 박산계곡 상류 테르스꼴까지 3시간의 버스여행, 6박7일간의 아들수 산군(山群) 탐사와 등반 등 지난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엘브루즈 등정은 고소 순응을 위해 고도를 점차 높여가는 방식으로 사흘만에 이뤄졌다. 첫 날인 7월 26일 테르스콜을 출발, 가라바쉬(3,750m)의 베이스 캠프, 배럴(Barrel)에 도착한 대원들은 빙하 사이의 설원을 헤쳐나가 '프리유트 11(4,200m)'까지 진출했다. 반나절 동안 무려 2,000m 가까이 고도를 올렸지만 이상증세가 나타난 대원은 없었다. 다음날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산악인들이 10여동의 텐트를 치고 야영중인 파스투코프 락스(4,800m)에 올랐다 배럴로 돌아왔다. 무수한 별들이 맑은 날씨를 예감케하던 28일 신새벽 어둠을 뚫고 마침내 정상 공격이 시작됐다. 새벽 4시 12명의 대원이 스노 모빌을 타고 파스투코프 락스 바로 밑에 내리자 50~60도 경사의 드넓은 엘브루즈 남면 설원이 펼쳐졌다. 정상인 서봉과 동봉(5,595m) 사이 안부까지 이어지는 트래버스(횡단) 구간이다. 등반경험이 풍부한 임 대장의 전략에 따라 대원들은 길 고 지루한 설사면을 기차놀이하듯 흐트러짐 없이 한 줄로 올랐다.

표지목을 따라 3시간반만에 꼴(col:5,200m)에 오르니 목조뼈대만 앙상한 작은 산막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봉 자락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자 눈평원과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났다. 사실 엘브루즈 정상은 남면 자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다른 지점을 정상으로 착각하거나 등반 도중 길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산정부의 눈평원을 헤쳐나가는 동안 이중화의 무게가 천근만근인냥 느껴지고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갈 무렵 정상에 다다랐다. 산행시작 7시간45분만에 전원이 등정한 것이다. 3~4평 남짓한 꼭대기에는 정상임을 알리는 철제표지판 3개가 바위에 부착돼 있었다. 고산에서는 하산이 고비. 일부 대원은 다리가 풀려 아이젠 찬 발이 엇갈리고 탈진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끈끈한 연대의식과 동료애로 어깨를 부축해가며 4시간만에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탐사를 마친 대원들은 엘브루즈를 향해 손을 모았다. 등반기간 내내 좋은 날씨를 가져다준데 대한 감사의 기도였다. 엘브루즈는 '눈 덮인 산'을 뜻하는데 현지 주민들은 '행 복의 산'이라고도 부른다. 과연 그랬다. 탐사대에게도 엘브루즈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산이었다.

글.사진=정후식기자 hschung@kwangju.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