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년 남편들의 '불안'-'40대 방황' 극복 아내손이 '약손'

남자 나이 39세. 곧 40대 중년의 시작이란 중압감 때문일까. 이맘때 쯤이면 39세 남자들은 곧잘 심각한 '마흔살앓이'를 통과의례처럼 겪는다. 특히 나이에 민감한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에게 '40'이라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렇다고 보통 40대 중반의 남자들이 겪는 갱년기 증상이나 사추기(思秋期·40대 중반의 남자들이나 폐경기 전후의 여자들이 겪는 신체적·심리적 갈등과 혼란을 10대 시절에 겪는 사춘기에 빗대서 하는 말)와는 또 다른 증상이다. 이때의 심리적 갈등과 혼란은 "나이값 좀 하라"는 아내의 핀잔에 곧잘 더 심각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배우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때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는 변재현(40·민우통상 대표)씨. 대기업체에서 수출업무를 담당하다 IMF위기 직전 독립,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다. 이미 상당한 재산을 축적,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편. 그러나 그런 그도 작년 가을 혹독한 '마흔살앓이'를 거쳤다.

"일을 찾아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어느 날 문득 마흔이 코앞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충격이었죠. 39세와 40세, 1년 차이인데도 그 느낌은 천양지차였습니다. 어른들이 들으면 우스울 것 같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도 되고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이제는 가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하는 초조감도 더해지더라고요".변씨는 이런 갈등과 혼란을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하고 휴일엔 종일 집에서 붓글씨연습을 하기도 했으며 혼자 힘들게 지리산을 종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마음고생을 이해해주는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변씨같은 경우는 별 무리없이 마흔살을 맞은 경우다. 때로는 '내가 마흔살이 되도록 해놓은 게 도대체 뭐가 있나'는 자괴감이 몰려온다. 때로는 '반평생은 이렇게 살아왔어도 나머지 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위기의 시기이자 유혹의 시기인 셈.

올해 서른 아홉 살인 이모(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 전업주부인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다. 12년째 평범하지만 별탈없이 회사원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마흔을 앞둔 지금 문제가 생겼다. 지난 10여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허탈해진다. 일하기도 싫고 또 내가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할까 하는 생각만 가득하다. 어느날 이씨는 아내에게 지나가는 투로 속마음을 이야기했다가 철없다는 비아냥만 들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돈이 들 시기라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만 들었던 것. 속마음의 갈등까지 이해해주리라 믿었던 아내에게서 들은 핀잔이라 상처도 컸다. 갑자기 외롭다는 느낌에 술로 마음을 진정시키곤 했다. 친구들의 바람기가 이해되기도 했다. 이 시기 남자들의 바람기는 나를 인정해주는 상대를 찾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박영우 대구파티마병원 신경정신과장은 이를 중년기에 들어서기 직전의 예비불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9라는 숫자에 아홉수라는 의미를 부여,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자기평가의 시기이기도 하다는 것. 이는 지난 시간의 평가뿐만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10년을 맞이하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40세에 새로운 꿈이 없는 사람은 절반의 실패자라는 말도 있다. 중년의 벽으로 들어서는 초입 40세. 일과 결혼생활에 대해서 재평가하는 시기다. 그만큼 가정에서의 아내의 역할도 중요하다. 새로운 도전이냐, 아니면 좌절이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들어선 시기이기 때문이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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