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쌀쌀해진 날씨...갈 곳 없는 노숙자

대구시내 모든 무료급식소를 줄줄 꿰고 있는 노숙자 박모(48)씨. 그는 지난 3일동안 단 세 끼 밖에 먹지 못했다. 중구 대신동 '서문교회', 약전골목 '자비의 집', 교동시장 '요셉의 집' 등 정기 무료급식소에 찾아간다 하더라도 90%이상이 노인으로 노숙자가 낄 자리는 없었다. 인원이 넘칠 때마다 탈락 1순위로 뽑혔고 "어디 젊은 놈이 할 짓이 없어서..."라며 혀를 차는 노인들 뒤로 뛰쳐 나오기 일쑤다. 박씨는 "올 초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찾아오던 이동 무료급식소가 여름부터는 일주일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데다 노인이외에는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시내 정기 무료급식소 46개는 모두 노인 대상이다. 이곳에 찾아가는 노숙자는 '왕따'신세고 그나마 점심만 제공할 뿐 아침.저녁을 주는 무료급식소는 없다.

또 장기 경기침체로 교회·시민단체들이 노숙자 밀집 지역을 돌아다니며 운영하던 이동식 무료급식소도 올해 들어 눈에 띄게 줄었다.

일주일 내내 저녁식사를 제공했던 동대구역, 대구역 급식소 경우 대구역 하나로 줄었고 두류공원, 대구대 대명동 캠퍼스 등지에서 거의 매일 점심을 제공했던 급식소들도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경상감영공원에서 지난해 3월부터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모(37)는 며칠째 오한에 시달리고 있지만 술이 유일한 '약'이다. 그는 주민등록 말소로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지도 오래다. 요즘 건설일용직으로 4∼5만원씩을 벌어오는 동료노숙자들에게 기대어 연명을 하고 있는 정씨는 지난 98년까지만 해도 어엿한 기업체 사장이었다. 지난 88년 고향인 경남 고성에서 대구로 온 정씨는 건설업체에서 착실히 돈을 모아 한때 종업원이 30여명인 사업체를 운영했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부도를 맞고 지난 99년 봄 집을 뛰쳐나왔다. 가족들은 빚쟁이들을 피하기 위해 정씨의 주민등록을 말소시켰다. 정씨는 "노숙자 대부분이 자신처럼 주민등록 말소자이거나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여서 병원 문턱을 넘을 수 없는 처지"라며 "저절로 낫기를 바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노숙자를 위한 건강진료 프로그램은 대구의료원이 대구역 북쪽 출입구에서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 여는 2시간짜리 '무료 건강검진'이 유일하다. 따라서 노숙자간 경쟁이 치열해 진료기회나 약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대구의료원 공공보건사업팀 김종진 팀장은 "지난달의 경우 날씨가 추워지면서 독감, 기관지염, 폐렴 등에 걸린 노숙자들이 대량으로 몰려와 한시간 정도 진료시간을 늘리기까지 했다"며 "최선을 다했지만 절반 정도인 50여명밖에 진료하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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