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일 총리의 말장난 방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한 보따리는 예견했던 대로 거의 비어 있었다. 우리는 그가 최근의 악화된 한·일관계와 관련,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한국민이 받아들일만한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는데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으나 결과는 역시 별무소득이었다. 정부는 이번 방한에서 가장 주목됐던 부분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진전된 입장'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은 종전 수준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가 "과거 일본이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말한 것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1995년 담화와 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답습하는 수준이었다.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역사공동연구기구를 설치해 올바른 역사기술이 이뤄지도록 노력한다는 선에 그쳤다. 이는 한·일간의 역사인식 차이로 볼때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참배가 잘못됐다거나 앞으로 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꽁치잡이 문제도 고위급 회담을 통해 논의키로 합의했으나 지금까지 취해온 일본의 태도로 미루어 볼때 만족할만한 수준의 조치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는 악화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성과물도 내놓지 않은 채 테러와의 전쟁을 활용해 취임후 계속 발목을 잡고 있던 인접국 외교에 대한 국내 부담을 덜고 자위대 파병 법안 마련과 헌법 개정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실리만 취한 셈이 된다. 월드컵 개최 등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은 중요하지만 먼저 양국간 신뢰감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과를 하면서도 '총리보다는 한 명의 정치인 그리고 인간으로서'와 같은 말장난을 하는 행태는 더이상 안된다. 일본은 진정한 우호관계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가시적이고 성의있는 조치를 시급히 취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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