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총체적 실패

97년 IMF 관리체제라는 환란(換亂)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분명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총체적 요인은 모두 파악되어 있다. 소위 아시아적 가치라는 문화적 요인도 있고, '큰 정부 작은 시장'이라는 경제 시스템요인도 있으며, 환율정책 실패 등 정책적 요인도 있고, 과잉시설 '과잉인원'과잉부채라는 기업적 측면도 있다. 그리고 YS의 리더십 실패라는 정치적 요인도 있고, 헤지펀드의 장난이 말해주는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느 요인이 가장 큰 요인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 요인 모두가 작용한 것이다. 이를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바꾸면 '정부실패+시장실패+정치실패'가 된다. 그러나 이 때의 정치실패는 지금과는 다른 수준이었다.

그럼 현재 우리가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겪고 있는 국가위기의 요인은 무엇인가. 야당은 대체로 정부의 정책실패와 같은 정부실패에 그 원인을 찾고, 여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여당과 비판만 하는 일부 언론 때문이라는 환경론 등 대체로 시장실패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번 역시 '정치실패+정부실패+시장실패'로 순위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현 정권 실패의 으뜸은 단연 정치실패다. '제왕적 대통령'이니 '선출된 황제'라느니 또 아무도 '아니오'라고 말 못하고 있다는 여당 스스로의 고백이 그 증거다. 이런 권력구조 하에서 어떻게 민주주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치는 대립과 갈등의 진원지도 '있으면 골치, 없으면 섭섭'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정치실패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의 손이 경제에 닿자 관치경제가 되나하면 검찰에 닿자 정치검찰이 되어버렸다. 이는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 신뢰실패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관치경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시장의 성숙도가 낮아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면도 있으나 빅딜의 실패 등 결과가 좋지 않음으로써 그 개입의 명분을 잃었다.

그리고 야당의 안택수 의원이 '대통령 사퇴 발언'을 할 때는 조용하던 여당의원들이 무슨 소리를 듣고는 다음날 울먹이면서 "(그 때)내가 왜 소리를 안쳤는지, 안 의원을 끌어내리지 못했는지…"하며 국회는 개판이 되어도 좋다는 식의 발언을 버젓이 하는 충성심 경쟁은 정말 가관이다. 정치개혁 실패의 표본이다. 이러니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게 된 것 아닌가.

실패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게이트 공화국'은 또 무슨 말이며 "법은 멀고 연(緣)은 가깝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형님 동생 공화국'은 또 무슨 말인가. 건전한 시민사회 건설에 실패한 것이다.

YS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했다면 DJ정부는 '국가 바로 세우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서 개혁을 통해 새로운 국가틀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는 좋았으나 실험은 거의 실패로 끝났다. 경제개혁의 실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교육개혁은 교실붕괴다 교육붕괴다 하는 말에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으며 의료개혁은 불편과 부담만 늘었다는 것을 국민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간첩과 통일운동꾼이 혼동되고 통일전쟁과 침략전쟁이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은 가치의 혼란인지 이념의 확장인지 정말 아리송하다. 차분히 가치를 조정하고 정리하지 않은 리더십 실패의 한 예이다.

최근 일본은 산·관·학이 1년 넘게 연구한 실패보고서를 내놓았다. 물론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고 일본의 부활을 꿈꾸기 위해서다. 그 실패연구의 이유가 재미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실패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원을 낭비해서 안되듯 실패도 낭비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너무 많다고 할 정도로 실패자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실패한 대통령만 해도 몇인가.

성공신화로 남을 것 같던 IMF외환위기 극복과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햇볕정책이 왜 신화로는 남지 못하고 있는걸까. 실패학을 활용해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의 지속과 답방불발 가능성에다 퍼주기라는 인식 등 후속사태가 좋지 않은 탓이리라. 어떻든 지금이라도 실패는 줄일 수 있고 또 줄여야 한다. 특히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되는 정치실패는 당장이라도 고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화와 타협이 뭐 그리 어려운가.

서상호(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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