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쌀값추락 농업보루 무너지나-불안한 추수이후

농민들은 정작 앞으로 한달 쯤 뒤부터를 더 두려워 하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그때쯤 가야 쌀값 동향이 제모습을 드러내고 논 매매도 본격화돼 상황 전개 방향이 뚜렷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먼저 쌀값 농협 미곡처리장에서 내는 쌀값까지 곤두박질 쳐, 80kg 가마니당 작년보다 이미 1만2천원이나 내렸다. 의성 단북농협 미곡처리장 경우 20kg 한 포대에 종전 4만4천원씩 팔았으나 지난 4일부터 4만1천원으로 3천원 내렸다. 이를 전국적으로 환산하면 1조1천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농협측은 추정했다. 단북농협 김종락 조합장은 "이런 쌀값 하락은 몽땅 생산농민 몫으로 부담이 되돌아 가고, 여기다 논값 하락분까지 합하면 농민의 재산상 피해액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농가 빚 설상가상 파산직면

청송군청 산업소득과 김명철 농사담당도 "쌀값 하락폭이 언론 보도보다 더 심각하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누가 논을 사려 하겠느냐는 전망 때문에 농촌이 지금 더 암울하다. 매매 전문기관인 농업기반공사 영주지부 농지규모화과 민복기씨는 "추수가 끝나면 다음달 초부터 매물이 늘겠지만 사려는 사람은 많잖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주 단산면 단곡리 이임상(40)씨도 "많은 농민들이 올 가을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의성 단북면 이연4리 전재경(44)씨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연말쯤 되면 논을 팔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농업기반공사 융자금으로 논을 샀다는 이 마을 쌀 전업농 박창식(45)씨는 이 때문에 논값 되갚을 일로 고민이 적잖았다.

안동 풍산읍 안교리 김영웅(61) 이장은 올해는 쌀값 불안 때문에 하락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고, 풍천면사무소 한철규 산업담당은 "도시로 이주하거나 노령으로 논을 팔려는 사람도 많아 헐값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군위 부계면 ㅊ부동산 최영식(53)씨는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간간이 사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그마저 없어졌다"고 했다. 군청 이명식(45) 부동산정보 담당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매달 70~80건의 농지 거래 신고가 있었으나 최근엔 땅을 팔겠다는 사람은 늘지만 거래는 거의 안된다"고 했다.

안동 최고의 곡창지인 풍천면 가곡들, 풍산읍 안교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풍천면에서는 1999년에 322필지 18만여평이 거래됐으나 작년 거래는 234필지 13만여평으로 줄었다. 김천에서 매매 등기를 대행하는 최모(65) 사법서사는 "농지 등기 의뢰 건수가 지금은 작년보다 70%나 줄었다"고 전했다.

안동 풍천면 가곡리 권대중 이장의 부인(60)은 "수입은 좀 떨어져도 안정성 때문에 농민들이 3~4년 전만 해도 여유가 생기는 대로 논을 사들여 경작 규모를 늘렸었지만 이제는 그때 산 값에라도 팔려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농민 담보대출 여력도 소진

영주 부석면 감곡리에서 논 농사 1만8천여평을 짓는 권오규(40)씨는 "쌀값이 가마당 1만~1만5천원이나 떨어진 뒤 이웃 도봉리에서는 평당 3만원선에 내 놓은 2천여평조차 매매가 안되고 있다"고 했다.

한때 대구 인근 시군 중 최고의 부동산 투자지역으로 손꼽혔던 청도에서도 거래가 중단되다시피 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논 매물은 많이 나오지만 매입 희망자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 이서면 전원공인중개소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이미 토지거래가 끊긴 상태이고 매물은 많으나 매입 희망자는 구경하기 어렵다"고 했다.

청송지역 6개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논을 내놓은 경우는 각 20~30건씩에 이르지만 거래는 전혀 안되고 있다. 군청 전무석 부동산 정보담당은 "지난 9월 한달 동안 138필지 171만4천330㎡가 매매된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대부분은 영농자금을 못갚아 경매에 넘어갈 지경이 되자 이웃.친척 등에게 명의만 넘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영덕에서도 실거래는 없고 법원 경매에 부쳐지는 논만 늘었다상황이 이렇게 된 뒤 군위 의흥면 박태문(53)씨는 "농사 짓는 것으로는 아이들 학비를 못맞춰 땅이라도 팔려고 했지만 쉽잖다"며, "이런 중에 땅 값은 하루가 멀다하고 떨어지니 이제 가만히 않아서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포항에선 경매로 내놔도 잘 안팔리자 농협 등 금융기관에서조차 논 담보 대출은 꺼릴 정도여서, 자녀 결혼자금.학자금 등 급전이 필요해질 경우 농민들은 손쓰기마저 어려워질 것이라고 농민들은 걱정했다.

가격하락에도 거래없어

경북지역에선 벼농사보다 참외.수박을 주로 하는 성주, 논이라곤 전혀 없는 울릉, 농사 외에는 별다른 기대를 않는 문경, 울진 등에서만 다소 예외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경작지보다는 공장용지.택지로 논을 보는 경산에서조차 논값 하락 현상은 나타나, 부동산 중개업협회 정경본 경산지회장은 "남매지 부근 등 시내 논은 최고 때 평당 36만원을 호가했으나 최근엔 24만원 정도로 곤두박질했다"고 전했다. 옥산동 ㅇ부동산 우병태씨는 "시내와 비교적 가까운 압량면 논 역시 2~3년 전 11만원에서 최근 8만원대로 떨어졌다"고 했다. 시청 전인숙 토지관리 담당은 "농지 거래량은 이틀에 한건 꼴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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