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정보비만 증후군

새벽에 배달된 조간신문을 손에 들자 상당한 무게를 느낀다. 얼추잡아 쉰 쪽이 넘고 보니 양손에 들고 읽기가 어려울 정도다. 기사들을 꼼꼼히 읽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제목만 대충 훑어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 조각난 정보들의 웅성거림과 이미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마는 셈이다. 텔레비전을 켠다. 온갖 소식들이 기자의 오달진 목소리를 타고 전해 온다. 화면은 아프간 전쟁에서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의 장면과 어느 도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소식까지 생생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언제나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해석이 따른다.

대학 캠퍼스 실내외의 모든 공간에는 현수막, 대자보, 광고문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모여라, 이리로 모여라, 여기에 진리가 있고 구원이 있나니' 마술과 신화 속과 같다. 연구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학교 전산망에 들어간다. 각 부서에서 엄청난 정보를 행정 전산화라는 미명 아래 쏟아 놓고 있다. 강조, 참조, 부탁, 청유, 의무 등의 어조 속에는 은근한 협박까지 섞여있다. 오늘 구내 식당 점심 메뉴는 삼계탕. 전자 우편함을 연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9개 있다는 전언이 고딕체로 뜬다. 그 중 하나를 연다. '허락도 없이 메일을 보내드려 죄송합니다'로 시작된다. 장삿속을 입에 발린 예의로 치장하고 있다. 야발스럽기 그지없다.

정보과부하 정체성까지 흔들어

이 달 내로 한 편의 논문을 끝내야 한다.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국회도서관으로 간다. 학위논문 방에서 '문학비평'이란 검색어를 입력하고 클릭하니 수십 편의 논문 목록이 쏟아진다. 몇 편을 내려받아 인쇄하면서, 이것을 꼭 읽어야 할지 망설인다. 나는 읽히지 않는 글을 참고하여 누구도 읽지 않을 글을 쓰려고 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고등학교 동창이다. 이번 토요일 월례회 장소는 동촌유원지에 있는 식당, 주차하기가 매우 편하다고 한다. 오후에 우편물이 한 보따리 배달된다. 생면부지의 모 국회의원 후원회에서 발간된 소식지가 섞여있다. "희망의 근거는 반성과 성찰, 그리고 철저한 절망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심각한 패러독스 앞에 주눅들고 만다.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신용카드 명세표에는 외상술 먹은 날짜와 액수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강제한다. 오늘날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과잉 현상을 두고 문화비평가 데이비드 셍크는 '데이터 스모그'라고 불렀다. 정보의 가치는 정확성과 투명성에 근거한다. 스모그로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정보는 정보로서 가치가 없다. 내 주위에는 쓰레기 같은 정보, 유해한 정보, 진실을 가리고 진리로 통하는 길을 방해하는 사이비 정보들로 가득히 차있다. 이러한 정보들의 소음과 떡떡거림 때문에 편히 쉬거나 명상에 잘길 겨를이 없다. 문제는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정보가 과잉 공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 공급과 처리의 불균형은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정보생산 시스템은 나로 하여금 정보 탐식가가 되도록 부추긴다. 나는 이들 정보로부터 잠시라도 단절되면 불안하다. 나의 기억력은 감퇴되고 시력은 아주 약해졌다. 지속적인 두통, 심인성 고혈압, 자주 찾아드는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정신이 아릿거려 자주 내 연구실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하루를 허비한다. 정보의 과부하로 정보 재생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가치와 품위를 잃어버린 오염된 정보들을 탐식한 결과다. 나는 지금 '정보비만증후군'이란 병을 앓고 있다. 이 병은 결국 나의 정체성까지 흔들어 놓고 말 것이다.

단순.최소주의 지혜 터득을

물론 신문을 읽지 않고,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라디오의 전원을 켜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가치 중립의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고 무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나는 이들을 떠나기 어렵다. '매체는 메시지이다'라고 한 맥루언의 선언적 명제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망치를 든 사람은 못을 찾을 것이다. 칼로 자르고 찌를 수 있다는 점은 단순히 기능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정보 비만과 과부하를 가져오는 컴퓨터, 텔레비전, 전화기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게는 육체의 건강을 위한 운동보다 정보 다이어트가 더 시급하다. 그리고 생활에서 단순성과 최소주의의 지혜를 터득하는 일이다..

이번 주말에는 정보의 소음들을 피해 대자연이 전해 주는 침묵의 소리를 듣고, 아무런 표지도 없는 텅하니 빈 가을 하늘을 한아름 안고 싶다. 단순한 아이가 되고 싶다.

신재기(문학평론가 경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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