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자립형 사립고

지난해 교육 오아시스를 찾아 해외로 떠난 초.중.고 학생은 2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자녀를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려는 학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이다. 지나친 자식 사랑은 자식을 망친다는 경고나 극성 부모의 왜곡된 교육열이라는 비난마저 이들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외화 절약이 애국이라는 호소도 효력이 미미했다. 교육 평등을 명분으로 교육열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이들에게 열린 길은 엄청난 교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유학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간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학교 선택권이 제한되고, 학력이 하향 평준화됐으며, 개성과 창의력이 존중되는 시대에 적응할 인재를 키워낼 수도 없었던 건 사실이다. 정부 주도의 여러 차례 교육 개혁도 더 큰 문제만 일으켰을 뿐이다. 그 대안의 하나로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들고 나왔지만 과연 지금의 부작용들을 보완하면서 위기의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생 선발, 교육 과정, 등록금 책정 등의 자율권을 가진 '자립형 사립고' 5개교를 확정 발표했다. 경북의 포항제철고, 전남의 광양제철고, 강원 횡성의 민족사관고는 내년부터 3년간 시범 운영하며, 부산 해운대고와 울산 현대청운고는 2003년부터 시작한다. 내년 시범 운영 학교는 이달 말까지 입학 요강을 공고해 12월 15일까지 입학 전형을 마치게 되며, '정주영학'.재택수업.교수사사.월반 및 유급제 등 이미 이색 교과과정을 내놨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그 결과는 실망스럽다. 내년부터 운영되는 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의 3개교 뿐이고,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평준화 지역엔 단 한 학교도 없다. 당초 계획 대로 본격적인 도입에 앞서 시.도별 1, 2개교씩, 전국엔 30개교 정도는 돼야 다양한 실험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의 여건으로는 이 제도의 도입이 '입시 명문고'의 부활에 지나지 않으며, '위험한 시도'라는 반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무조건 반대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의 고교 교육은 대학 입시와 직결돼 있으므로 대학 입시가 엄존하는 한 이 제도의 도입은 또 하나의 입시 준비 기관이나 '귀족 학교'를 낳을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가 제 구실을 못해 왔기 때문에 그 같은 걱정도 떨칠 수 없게 한다. 이번의 초라한 시범운영을 바라보면서 이 제도도 '반쪽 정책'이 될 것만 같아 이래저래 씁쓰레할 따름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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