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향민 고향의 봄은 언제오나

"겨우 100명씩 오가는 것마저 자꾸 미뤄지니 정말 가슴이 미어집니다. 부모, 형제를 만나지도 못하고 늙고 병들어가는 괴로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실향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22일 낮 12시 대구시 북구 오봉산 침산공원내 망배단.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실향민 200여명이 모여 망향제를 올렸다. 북녘에 계신 조상께 매년 지내는 망향제이지만 지난 16일로 잡혔던 4차 이산가족상봉이 연기된 탓에 올해는 더욱 침울한 분위기였다.

축문이 읽혀질 무렵 실향민 2세 이춘서(45.대구시 수성구 수성동)씨는 구석진 곳에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이씨의 부모님은 모두 실향민. 아버지는 6.25 당시 평안남도 순천에 부인과 아들을 남겨두고 남한으로 내려와, 평양이 고향인 어머니를 만나 재혼했다. 이씨는 "올해로 86세를 맞은 아버님이 날이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돌아가시기전 단 한번만이라도 고향땅을 밟아 북의 어머님과 형제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1.4후퇴 당시 황해도 평산에 부모님을 두고 왔다는 오규찬(63.대구시 남구 대명동) 씨는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고향의 모습이 더욱 또렷이 떠오른다"며 "살아서 고향을 찾을 수 있을지…"라며 눈물지었다.

한 실향민은 "대구에만도 60이 넘은 1세대 실향민이 2천여명이 넘고, 전국적으로는 11만명이 넘는다"며 "고령자들이 기다림에 지쳐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는 만큼 남북한 당국은 획기적인 상봉과 안부확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시간 정도의 망향제는 동요 '고향의 봄'을 부르며 끝났다. 주름이 가득한 눈가를 훔치는 실향민들의 노래는 끊어질듯 이어지며 북녘하늘로 퍼져나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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