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북 회담장소 기싸움

북한이 제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비롯해 각종 남북 회담을 금강산에서 열 것을 고집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12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각종 회담장소로 금강산을 제시한 이후 지금까지 일정은 변경하면서도 장소 문제에 있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김령성 남북 장관급 회담 북측 단장은 23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평양과 서울에서 2차례씩 회담을 하고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장관급 회담을 한차례 개최한 전례에 비춰볼 때 금강산에서 장관급 회담을 열자는 북측의 주장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북측 제의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통일부 장관인 홍순영 장관급 회담 남측 수석대표가 지난 22일 제6차 장관급 회담을 오는 28일 평양에서 열자는 수정제의를 거부한 채, 지난 18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남측에 밝혔던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 셈이다.

북측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남측이 취한 '비상경계조치' 때문에 신변위협이 따르는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태권도 시범단 서울 파견이 힘들고 회담 역시 평양이 아니라 금강산에서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측이 금강산을 회담 장소로 고집하는 까닭은 남측의 '비상경계조치'라는 표면상의 이유 외에 '북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측이 각종 남북회담 개최장소로 평양보다는 금강산을 고집하고 있는 것에 대해 "평양을 남측에 공개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북한 역시 미국의 테러참사와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계기로 남한과 비슷한 수준의 경계태세에 돌입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측 대표단을 평양에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며 군부의 입김 역시 세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측이 회담 장소를 문제삼는 남측의 태도에 "말도 안된다"고 일축하면서도 "온민족의 기대에 맞게 북남대화의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회담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는 점도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노동신문도 지난 22일 논평에서 "오늘의 북남 대화는 결코 쉽게 마련된 대화가 아니다"면서 "우리측의 거듭되는 대화 제의를 성실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조속히 대화에 나설 것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1년에 몇차례의 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는 것은 괜찮지만 남북회담이 정례화될 경우 시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숙식이나 차량 제공 등 금전적으로 부담 없이 '속 편하게' 회담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금강산을 고집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또 북한은 장소문제로 불거진 남측 여론을 알고는 있겠지만 최고위층의 지시를 일관하게 따르는 '북한식 잣대'를 갖고 남측을 지켜보기 때문에 금강산이라는 원칙적인 회담 장소만을 고집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세종연구소의 이종석 박사는 "북한이 금강산을 고집하는데는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꾀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은 제2차 당국간 회담에서 남측 정부의 관광대가 지불보증을 받아내려 했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자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유보시켰다가 대화를 재개하면서 남측의 답을 받아내려는 이중적 접근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북측 지역에서 남북간 회담을 해야 식량이나 전력, 금강산 관광 활성화 문제 등 실익을 챙길 수 있는 사안을 신속하게 논의할 수 있기 때문에 북측이 금강산을 고집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북측당국의 지시가 원활하게 하달될수 있는 평양이 금강산보다는 낫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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