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여당의 자충수

정치뉴스에 다소 둔감한 일부 국민들은 요즘 신문이나 방송뉴스를 건성으로 듣곤 지난 여름 김홍일 의원이 제주 휴가중에 무슨 큰일이나 저지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 배경엔 그가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이고,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 아들'에 대한 '특이한 증후군'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멀게는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養子) '이강석'이 있고 가깝게는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국민들 머리속에 강하게 각인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 아들'에 관한한 '특이한 정서'를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황태자'로서 대통령이란 막강한 권력이 그의 등에 업혀있기에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주변엔 늘 사람들이 들끓게 마련이고 그래서 구설수도 많이 나게 돼 있다. 경우에 따라선 그 주변의 사람들이 잘못 처신하는 바람에 덤터기를 쓰면서 엉뚱한 오해도 받고, 또 요즘 유행하는 온갖 의혹을 사기도 한다. 그래서 '대통령 아들'은 그 처신에서 '보통사람'보다는 수십배이상 조신(操身)하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 그 아버지인 대통령에 까지 누를 끼치게 마련이다.

특히 김홍일 의원은 바로 직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국정을 농단하다 결국 아버지가 대통령 재직때 구속되는 불행을 목격했기 때문에 더욱 처신에 신중을 기했으리라 믿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 아들'이란 그 자체가 오히려 '불편한 멍에'를 짊어졌다할 정도로 거추장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김홍일 의원은 그의 말마따나 지난 여름 제주도에 휴가를 다녀왔을 뿐이다. 다만 거기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몇몇 지인(知人)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담소를 했을 것이다. '대통령 아들'이라고 해서 이 세상과 단절하고 지낼 수는 없는 만큼 그럴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야당의원들이 '이용호게이트'의 몸통의혹으로 그를 지목했고 공교롭게도 같은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휴가지에 있었다는 게 문제가 된 것이다. 휴가를 함께 즐길 정도이면 의혹의 방증으로 충분한게 아니냐며 야당이 제시한 게 제주경찰서 정보형사의 '김홍일 의원 동정보고서'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부패여행''이니 어떠니 하면서 야당 대변인이 다소 거친 표현을 쓰면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건 다소 지나친 면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함께 휴가를 간 그 자체가 몸통의혹의 직접증거가 될수도 없고 그저 그 개연성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또 그 정도이상의 방증은 그 이전에 벌써 숱하게 제기된바도 있다. 그렇다면 여당쪽에선 '터무니없는 모함'정도의 대변인 성명 한쪽이면 일과성으로 그만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지나쳤다면 듣는 국민들 입장에서도 "또 그 얘긴가?" 정도로 반응을 보이며 그만인게 작금의 현실이다. 당특위위원들이 대거 내려가고, 경찰은 그 정보형사와 야당간부를 긴급 체포하고, 야당당사를 수색하고, 끝내는 공무상 기밀 누설혐의로 구속영장까지 신청하는 바람에 일은 더 커진 셈이다. 게다가 법원에서 그 영장을 기각했으면 그만이지 경찰이 일을 잘못처리했다면서 또다시 대검에 고소를 하는 법석까지 떨 필요가 있었는지 여당은 생각해볼 일이다. '결백을 증명'해 보이려다 오히려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지?"라는 여론을 조성한건 순전히 여당의 과민반응의 소산이다. 김홍일 의원의 제주도휴가동정이 공무상 기밀인지 조차 법원판단 이전에 상식선에서 판단 못한 '여당의 흥분'을 보고서 국민들은 "나라경영을 저렇게 하니까 이지경이지"라는 냉소만 불렀다는걸 집권여당은 냉철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대검에 고소까지 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정치검찰'로 오해받고 있는 검찰입장만 난처해진데다 경찰은 "우리는 핫바지라는 말이냐"는 왕따심리까지 부추겼다는 사실도 한번 반추해볼 일이다.

급기야 대검 공안부장이 김 의원과 함께 동행했다는 새 사실까지 들춰지면서 일은 자꾸만 꼬여가고 있는게 이번 '보고문건 파동'이다. 한마디로 그 배경엔 이번 재·보궐선거가 여·야 모두를 너무 강박하게 만들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여당의 법석'이 화를 키운 셈이다.

여당의 자충수(自充手)라도 이만 저만한게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 여·야 정치권에선 재·보궐선거가 천하대세를 가를만큼 중대사안인지 모르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핍박해진 경제상황에서 당장 먹고사는게 더 급하다. '테러공황'이 온 나라를 짓누르면서 되는 장사가 없다하고 20여만명의 대졸자들이 일자리를 못찾아 허겁지겁이며 청장년 실업도 심각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재·보궐선거가 있는줄조차 모르는 국민들도 많다. 이런 판국에 내년 지방선거에다 대선(大選)까지 겹쳐 다가오고있으니 '나라살림'이 어떻게 되겠으며 '국민경제'는 어디로 떠내려갈지 정말 걱정스럽다.

나라를 책임진 집권여당의 덤벙거리는 '정치수준'을 이번 '제주도파동'에서 확인했기에 '격전의 내년'이 과연 성할까 불안이 앞선다.

집권여당은 이번을 거울삼아 좀더 의연한 포용력으로 국민들의 이 불안만은 최소한 덜어줘야 한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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