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국기법)'이 첫돌을 넘겼다. 근로능력에 관계없이 최저생계비 이하 저소득층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할 필요성을 법제화했다는 의미를 가졌지만 시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정부의 당초 주장과는 달리 최저생활이하 가구 모두가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고 수급자의 최저생활 또한 충분한 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26일 오후 대구시의회 소회의실에서 우리복지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 1년, 성과와 과제'토론회를 지상(紙上)중계한다.
◇성과
주제발표를 한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허선 교수는 긍정적인 변화의 하나로 노동능력자가 있는 가구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생계비 지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법에 명시된 점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예전에는 노동능력자가 있는 가구에 생계비를 지원하지 않아 결식아동·결식노인이 다수 발생, 사회문제가 됐으나 국기법 시행으로 이들 가구에 생계비 지원이 가능해졌다는 것.
허 교수는 또 제도의 합리성과 대상자간의 형평성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부정수급자나 보호불필요자를 탈락시키고, 그동안 보호받지 못했던 요보호자를 수급자로 선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의 주먹구구식 복지행정에서 각종 데이터를 이용한 체계적인 행정으로 전환됨으로써 국가 재정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해 졌다는 점도 시행 1년의 성과라고 허교수는 주장했다. 예를들어 자산조사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숨겨둔 채 생보자로 선정되고 있었던 사람들이 드러나게돼 적지않은 부정수급자가 탈락 조치됐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지난 99년 54만명에 불과했던 생계비 지급대상자가 지난해 12월 149만명으로 늘어났고, 올 8월에는 151만명으로 증가, 국기법 시행이후 생계비 지급대상이 크게 확대됐다.
또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주거비수준이 크게 향상돼 소득이 없는 4인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법시행전 72만9천원에서 법시행후 84만2천원으로 15.5%가량 올랐다.◇문제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수급자 선정'이라고 허선 교수는 말했다. 허교수는 기존의 빈곤가구율 추정 결과를 살펴보면 지출을 근거로 한 도시 전가구의 빈곤율은 98·99년도의 경우 약 20% 내외이고, 소득을 근거로 한 근로자가구의 빈곤율도 7~11%정도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생활보호대상자수는 한시적 생보자를 포함하여 1999년의 경우 약 192만명(배정인원, 한시적생보자수는 76만명)으로 전인구의 약 4.2%, 전체가구의 4.6%에 불과했고 2001년도 기초보장수급자수도 151만명으로 전체의 3.1% 수준에 머물러 빈곤층 상당수가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빈곤율 추정은 현재 소득을 이용하고 있지만 지출자료가 최저생활 판단여부의 잣대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허 교수는 덧붙였다.
이밖에 생계비수준도 사실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허 교수는 판단했다. 소득이 한 푼도 없는 1인가구는 28만6천원의 생계비를 지급받도록 되어있지만 대다수 수급자들에게 추정소득, 간주 부양비 등을 부과해 실제로 28만6천원을 받는 가구는 극히 적다는 것. 이에 따라 실제 1인가구의 월 평균 급여는 12만원(주거급여 2만3천원)에 불과하다고 허 교수는 자료를 인용해 밝혔다.
이른바 쪽방의 한달 월세가 15만원 정도이고 수급자들이 주로 사는 영구임대 아파트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친 액수가 15만원 정도임을 고려할 때 수급자가 최저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허 교수는 아울러 대도시 최저생계비가 중소도시보다 높음에도 단일 기준(중소도시기준)을 적용, 대도시지역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목소리
대구 남구청 사회복지과 강경희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업무수행에 있어서 투명성 부족 문제가 제기돼 주민불신의 여지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산조회 및 금융조회를 전산으로 일괄 조회하지만 국세청의 데이터는 97·98년 자료여서 사실여부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것.
소득부문도 국민연금에만 의존하고 있어 일반 자영업자 및 음성 소득자에 대해서는 평균치 및 통상시세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 금융조회를 연간 1회 일괄실시하면서 조사시점이 반년전의 데이터여서 부정수급자의 양산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문제로 꼽았다.
강 사회복지사는 이와 함께 근로유인책의 부족으로 근로의욕을 심어주기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자활사업을 열흘한 사람과 보름한 사람의 생계급여 차이가 2만2천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살아날 리 없다는 것.
강 복지사는 아울러 격무로 인한 사회복지사들의 사기저하 또한 국기법의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김경도 대구경북지부장은 자활지원사업이 특정 성공사례에 편중, 획일화하고 양적 확대에 치중해 내실이 떨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구쪽방상담소 한재흥 소장은 "국기법은 주민등록법"이라며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정상적 수급자가 될 수 없으므로 거리노숙자와 쪽방생활자들을 위해 정부는 수급자가 될 수 있는 법적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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