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의대교수 출신 학생 장성익씨

◈암 연구 집념 한의학 '만학도'경북대학교 의과대학과 계명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99년까지 20여 년 해부학을 가르쳐 온 장성익(55)씨. 계명대 의료원 교수 협의회 의장을 역임할 당시 이른바 '계명대 사태'라고 알려진 총장 직선제 문제가 불거졌고 그는 '재단 임명 총장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소신을 밝힌 죄로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정든 연구실과 교단을 떠나야 했다. 각종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던 연구를 중단하고 몇몇 직함을 정리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당시 한창 연구 중이던 암 관련 유전자 연구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볼 요량으로 2000년 3월 경산대학교 한의과 대학에 본과 1학년에 편입했다.

방금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오는 장성익씨를 만났다. 흰머리에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키 큰 중년의 신사였다. '시험은 잘 치렀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생각보다 못 치렀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밤을 새워 꼬박 외웠지만 아직 필기 속도가 늦어 애를 먹었다는 말이었다. 본과 2학년인 그는 하루 평균 7시간 수업을 받는다. 공부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작년 한해는 딱딱한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견디는 일만해도 곤욕이었다. 연구실의 깊숙한 의자와 교단에 길들여진 그였다. 게다가 나이를 먹은 눈은 칠판 글씨를 알아내지 못해 안달이었고 한문을 써내기에 30여년 간 영어에 익숙해진 손은 애처러울 만큼 서툴렀다. 서양 의학에서는 용어의 90%정도를 영어로 작성하고 한의학은 그 반대이니 고달플 만도 하다.

"칠판 글씨도 잘 안보이고, 젊은 친구들이 쳐다보고 있으니 졸 수도 없었죠". 그는 작년 한해는 자식 뻘 되는 동창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나 않을까 몹시 신경을 썼던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말조심하느라 웬만해서는 말을 걸지 않았다. '침묵'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해였다.

"지금은 좋아졌어요. 가끔씩 클래스메이트와 맥주도 마시고 농담도 주고받아요". 그는 올 가을 '클래스메이트'의 주례를 서기로 돼 있다. 같은과 학생이 주례를 부탁해오는 걸 보면 그다지 격 없어 보이지는 않았나 보다. 영어에 익숙한 때문일까, 아니면 '동기생'이란 말은 여전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일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창, 동기란 말 대신 '클래스메이트'란 말을 썼다.

장씨는 개인적 공부에 하루 평균 2시간을 할애한다. 아무래도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오랜 사회 생활로 인간관계도 복잡하고 생활 동선도 복잡하다.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가 보아야 할 곳도 많다. 많은 사람들은 장성익씨를 세상을 힘들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낯선 한의학을 공부하느니 개업을 하거나 다른 대학의 교수로 가면 그만이지 않는가 하고 충고한다. 그는 개업은 생각도 해 본 일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모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것은 후배들에게 방해가 될 뿐이다. 나름대로 일정에 따라 진행중인 후배들의 연구에 지장을 줄뿐이라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 암 유전자 연구 중에 어렴풋이 무엇인가를 보았어요.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고 한의학을 공부하면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됐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면 불편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한의학 공부를 시작한 그에게 30여 년 동안의 서양 의학은 되레 방해가 된다. 인체를 이해하는 방식, 수업내용, 접근 방법, 과정이 모두 다르다. "충분히 익히고 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겠지요. 굳이 한의학과 서양 의학을 따로 떼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고 상호 보완하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장씨는 1주일에 한번씩 한의대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강의를 맡고 있다. 수업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협진' 쯤이라고 해두자. 서양 의학의 발달 수준, 연구 방식, 한의학과의 협진, 서양 의학의 장점과 단점 등에 관한 강의인 셈이다. 새롭게 출발대에 선 장성익씨, 나이 지긋한 그에게 4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러나 그는 해야 할 일이기에 시작했노라고 말한다. 그 억양엔 굳은 결심이 묻어난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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