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린이 엽기취미 어른 탓 아닌가

며칠전 초등학교 5학년 딸의 책상 위에 공책 한권이 놓여 있어 내용물을 들춰보다가 깜짝 놀랐다. 구속영장과 수갑, 화투, 사채증서가 나왔다. 이중에서도 구속영장에는 '피고인은 원고인을 너무 좋아했으며 아끼고 편안하게 해주었기에 체포한다'는 죄목이 적혀 있었다. 또 부적과 자동납부 영수증, 수표 견본 등 어른들의 세계에서나 사용되는 물건들의 그림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했다. 딸에게 "뭐냐?" 고 물어보니 요즘 유행하는 '엽기 편지지 모음'이라고 말했다.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 성인세계를 모방한 놀이나 잔혹한 컴퓨터 게임, 인터넷 엽기유머 등이 유행한다는 것이었다.

고운 동심을 가꾸어가야 할 어린이들이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돼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너무 충격적이었다. 담임선생님에게 상의를 드렸더니 요즘 아이들에게 대유행이어서 학교에서도 지도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고 했다.요즘 아이들은 애정표현 조차 순수하고 낭만적인 방법이 아닌 자극적이고 역설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의 정서가 어떻게 이 정도로 황폐해졌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엽기 편지지에는 우정자동납부 청구서, 눈물 사용료 고지서같은 것도 있었는데 이건 우정이나 눈물도 돈으로 환산, 지로를 통해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극단적 물질주의가 아닌가.

아이들이 세속적이고 폭력적이며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도록 만든 것이 어른들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민경화(경주시 동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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