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수십 층 허공에 몸뚱아리를 비끌어맨다

5㎝ 비계목 허공 세상에 깨금발로 서서

한 걸음 걸음 삶을 질기게 엮을 때 마다

오줌을 찔끔찔끔 지린다

튼튼한 땅을 밟고 서서 감독은

안전모를 쓰라고 쓰라고

손짓 발짓 고래고래 고함지른다

모기 앵앵거린다

공사장 귀퉁이엔 어제 추락한 배 씨의

안전모가 찌그러진 채 나뒹굴고 있다 노랗게

민들레가 눈을 질끔 감고

찌그러진 깡통도 덜 덜 떨고

비계목 공의 하루 하루가

거꾸로 매달려

빈 하늘 참집 천막지붕처럼

시씨발팔 씨시팔팔거리고 있다

-안윤하 '삼각뿔 거꾸로 선 하루'

'비계'란 건축 공사 등에서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나무나 쇠파이프를 가로 세로 엮어 만든 시설을 말한다. 이 시는 공사장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좀더 확대해서 말한다면 우리의 긴 인생도 공사장에서의 짧은 하루살이인지 모른다.

수십 층 허공에 맨 몸뚱아리를 비끌어 매고, 오줌을 찔끔찔끔 지리면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지난한 삶. 그런 삶 앞에 튼튼한 땅을 밟고 선 자의 목소리는 모기처럼 앵앵거릴 뿐이다. 왜? 러시아 작가의 말처럼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봐야만 인생의 깊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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