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

"우선 스타가 출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관객이 현실의 구차한 이야기를 보고싶지 않기 때문이죠".

임순례 감독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흥행부진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느냐'는 우문에는 "100명 중 95명이 보지 않는다 해도 5명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현답했다.

'와이키키…'는 30대 중반이후를 겨냥한 마흔 두 살 처녀감독의 두 번째 작품. 1년이 넘는 시나리오 작업과 그만큼의 촬영기간이 필요했다. 1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자되었고, 올 3월에 완성되었으나 입소문을 거치는 홍보전략을 위해 지난 27일에야 개봉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전주국제영화제'나 시사회에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흥행성적은 썩 좋지 못하다. 이는 관객이 '조폭영화'류의 오락에만 편향된 시각을 지니고 있고 말초적 자극에 익숙한 때문인 듯 하다. 또한 TV드라마에서는 주 시청자로 편입되었지만 영화는 잘 보지 않는 30대 중반 이후를 마케팅 대상으로 삼은 탓도 있겠다.

'와이키키…'는 남들은 졸업과 동시에 깨끗이 잊고 살지만 자신은 여전히 고교 그룹사운드의 열정을 지니고 사는 아웃사이더의 이야기. 반주기와 리듬박스 등 현대음악장비에 밀리고 야간업소 풍경이 달라지면서 고민한다. 꿈을 따르자니 배가 고프고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현실에서 적응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남는다. 무대에는 그가 죽을 것 같이 사랑하는 여자의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농익은 목소리가 있다.

누군가가 '사랑에 미친 사람들만이 역사를 만든다'고 했다. 불타는 사랑은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와 그런 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영화속의 사랑은 추억을 붙잡아 희망을 남긴다. 흔히 보여지는 위험한 애정이나 충만한 최고의 섹스에는 관심이 없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궁상맞은 사랑이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널부러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가을 그가 부럽다. 어쨌든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의 곁에는 아릿한 추억의 사랑이 도망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가을을 타고 여자는 봄에 바람이 난다던가.

'와이키키…'에는 고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특히 가을을 타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근심 수(愁)라는 한자어를 풀이하면 가을의 마음이지 않은가.

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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