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올바른 비판문화(批判文化)가 없다'고 한다. 서로 봐주는 '집단주의 문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놓여 있는 집단이나 그 성원에 대해 비판했다가는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비판했을 경우 그 당사자는 대꾸조차 없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더 강한 비판으로 맞섬으로써 갈등을 부르곤 한다.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비판의 본래 목적은 활발한 의사소통을 전제로 발전적인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바람직한 방향을 찾자는 데 있다. 미운 사람을 비하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비판의 한 기능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비난을 위한 비난'이 될 수 있다.
◈비판을 '왕따'시키는 문화
어린이·어른 할 것 없이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좋은 소리 듣기를 좋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기도 한다. 한 학자는 환갑을 넘기니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만 곁에 두고 싶어지더라고 고백한 사실도 있다. 마치 '공주가 개구리에게 키스를 하면 개구리는 왕자로 변하고, 공주가 그에게 입맞춤을 하면 키스로 답하게 된다'는 이야기와도 같이 칭찬만이 '선(善)순환적 피드백'을 낳게 마련이다.
누군가 '고속도로에서 여성들이 엄지손가락을 올려 자동차를 얻어 타는 히치하이킹의 확률은 가슴 크기와 비례하고, 남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아이큐 지수와 반비례한다'고 했다. 남을 헐뜯고, 독침을 쏘고, 직설적으로 받아쳐야만 상대적으로 자신이 우위에 서게 된다는 '잘못된 생존 원칙'이 지식인 사회에 만연해 있는 탓일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편을 가르고 '집단 괴롭히기'를 일삼는가 하면,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패거리 의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다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편을 갈라 패거리를 짓고, 그 세(勢)에 업혀 가려는 목청 높이기는 이제 지겹다. 지역 감정, 레드 콤플렉스, 언론 세무조사 등이 그렇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문열(李文烈)씨 소설책 장례식도 '집단 괴롭히기'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지금 지식인 사회에서는 실제로 입장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화되고, 집단 콤플렉스가 고질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 굳은 '편견의 돌덩이'는 어떠한 비판이나 문제 제기, 진리의 힘이나 양심의 목소리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리버럴리스트'라고 자처하는 지식인에게도 집단 콤플렉스는 예민한 아킬레스건이어서 조그만 자극에도 스위치를 넣은 자동인형처럼 그 주술의 포로가 되곤 한다. 이는 오직 자기 마을만 절대시하고 타자의 존재를 완강히 거부하는 원시부족사회의 가치관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은 이성(理性)이 발달하면서 못을 만들어 물을 나눠 가지게 됐지만, 제 논에 물을 대려하는 것은 소박한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은 곤란하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발달을 금욕주의 정신에서 본 반면 브렌타노는 인간 욕망의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했다. 다윈은 자연계의 생존 원리를 약육강식·적자생존의 법칙으로 풀려고 했으나 크로포토킨은 상호부조의 법칙을 제시했다. 사회 현상에 대한 견해도 이 같이 상반되는 논리가 가능하다. 라스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상극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산설'을 폈으며, 소로킨은 공업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닮아간다는 '수렴설'을 주장했지만 다 일리가 있지 않았던가.
◈'차별'을 버리고 '차이'를 인정하자
지금은 다양화·다원화 시대다. 제 논에 물대기 차원을 넘어서서 못까지 차지하겠다고 덤비는 집단이기주의는 지양돼야 한다.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차별'을 버리고 '차이'를 끌어안을 때 '대립적 관계'마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공생적 관계'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군자(君子)는 정의를 표준으로 하나 소인(小人)은 이익을 표준으로 한다'고 했다. '(권력의) 가장 좋은 배합은 강력한 자비이며, 가장 나쁜 배합은 약체와 투쟁'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 '강력한 자비'와 '군자'형의 사람들, 올바른 '비판 문화'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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