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상최악 대졸취업 탈출구 없나

대학졸업예정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백수생활'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른바 '잘 나가는 대학'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 학생들도 취업전선에서 줄줄이 '전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방에서 청년실업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난리지만 정부라고 뚜렷한 해법이 있을 리 없다. 인턴제 등 단기 실업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약효가 크지 않다. 우리나라 교육구조와 취업관행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는 이유다.

0..대졸취업난 현황

내년 2월 ㄱ대를 졸업하는 박모(95학번)씨는 12전12패를 기록하고 있다. 원서를 낸곳마다 고배를 마신 것이다. 지방대에다 인문사회계열. 이같은 핸디캡때문에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 토익점수가 900점 안팎에 이르지만 기업들은 박씨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백수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박씨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은 '자신감 상실'이다. 처음 몇번 떨어졌을 때는 괜찮았지만 이젠 '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

취업재수생들은 훨씬 더 심각하다. ㄱ대 졸업생 이모(93학번)씨의 취업전적은 백전백패다. 취업전선에서 더 이상 싸울 여력조차 없다. 지난해 2월 졸업이후부터 지금까지 원서쓰고, 면접다니느라 쏟은 교통비만 수백만원이 넘는다.

이씨는 올해가 '막차'다. 연령제한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취업난이 사상 최악이다. "1천만원 가까이 들여 어학연수까지 갔다오고 자격증까지 갖췄는데 합격통지서는 안날아옵니다. 제 자신도 밉지만 세상이 더 원망스러워요". 이씨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린다.

취업정보전문업체인 리쿠르트 조사에 따르면 올 가을 취업시장에서 100대1이상의 경쟁률을 나타낸 기업이 10곳을 넘었다. 한 기업체는 4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취업불패'로 불리던 경북대 전자공학과도 올해만큼은 취업률이 신통치 않다. 한 졸업예정자는 "10명 가운데 서너명꼴로 취업에 실패한 동료학생들이 있다"며 "올해는 정말 최악"이라고 말했다.

취업정보전문업체들은 올 해 대학졸업자 17만여명에다 취업재수생까지 합쳐 모두 43만여명이 올 가을 고용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으나 일자리는 7만여개에 불과, 30만명이상이 취업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0.. 변화가 필요하다

대졸취업난은 구조적인 문제다. 고성장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저성장시대에 들어선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수십만명의 대졸자를 흡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들의 채용관행이 수시채용.경력직선호로 바뀌었는데도 대학들은 아직 이같은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와 관련, 최근 현행 대학 학기제에 대한 개선논의를 제기했다. 현재 2학기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 학기를 4학기의 다학기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노동부가 다학기제를 들고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전문대를 포함, 대학졸업생들이 매년 같은 시기 연간 49만명씩 쏟아져나오면서 수시채용으로 채용형태를 바꾼 기업들의 인력수급관행과 심각한 불일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

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수시채용비율은 벤처기업 93.8%, 비상장기업은 90%에 이른다. 상장기업전체로는 73.6%나되며 이같은 수치는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할 때 6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노동부는 대졸자들의 졸업 후 구직대기기간은 평균 8.5개월이지만 2학기에서 4학기로 바꿀 경우, 구직대기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재학생들의 분기별 휴학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취업준비가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대학이 다학기제를 도입하면 현재 방학기간에만 실시하고 있는 재학생들의 인턴제 등을 3개월단위의 직업체험프로그램으로 개발, 대졸자들의 구직을 도울 방침이다.

대학의 교육내용도 기업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즉시 쓸 수 있는 인재를 원하는데 대학은 아직 이같은 인재를 키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토익성적이 900점이 넘는 학생이어서 뽑아놓고보니 정작 외국인과 마주해서 말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기업은 이런 신입사원을 위해 입사후 재교육을 시켜야한다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대학이 외국어 하나도 책임못지는데 다른 직무능력에 대한 교육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대학이 바뀌어야합니다". 지역 대학의 한 취업정보실 관계자는 대학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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