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이 가을엔저리도 애절한 몸짓으로 부르는

억새숲으로 가리라

못다한 그리움과 한스러움을

탈색하여 버리고

회백색 무욕의 한포기 억새로

서 있으리라

이 가을엔

가슴 꺾으며 속울음 우는

억새숲으로 가리라

저 빛나는 산등성이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하얀 손 흔드는

그리움의 불씨하나

그 불씨 지펴

저미는 그리움도

그립다는 생각마저도

태워버리리라.

하청호 '억새'

시인은 이 가을 산등성이에서 하얀 손을 흔드는 억새숲을 보고 시를 쓴다. 억새의 흔들림은 시인을 부르는 애절한 몸짓이다. 시인은 못다한 그리움과 한스러움을 탈색하여 버리고 회백색 무욕의 한포기 억새로 서 있으리라고 다짐한다. 나는 이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저 빛나는 산등성이에서, 그리움의 불씨를 가슴에 품고서도, 진정 무욕의 존재로 서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은 바로 가슴을 꺾으며 속울음 우는 행위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인의 속울음은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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