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합 데스크-행정, 너라도

식자층 사이에 다음 대통령 감이 없다는 걱정들이 많다. 지난 몇 대의 대통령들에 대한 뼈아픈 실망감이 그런 여론을 조기화 하는 모양이다. 일전 한 시사만평은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 "면도칼로 사과를 깍을까 불안하다"는 평가를 실었다. 대통령 되기에는 인품이 너무 각박하다는 뜻일 것이다. 민주당 한 유력 후보에 대해서는 "일을 떠맡기려니 나라가 너무 크다"는말로 그릇 없음을 꼬집었다. 세간의 우려를 족집게처럼 집어낸 만평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되면 현 정권 이상의 독선을 보일 것"이라는이야기들이 떠돌아 걱정이 배가된다.

요즘 차기 대선 후보자들이 저마다 자격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을 안심시킬 동량은 쉽사리 눈에 띠지 않는다. 자질이 있어 보이는 이는 세가 궁핍하고, 세가 있는 이는자질이 걱정스럽다. 역량 있는 대권후보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우리 정치제도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열매를 맺을 풀은 도태되고,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는 우리 정치판에서 '갖춘 후보'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3류 정치'의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한 것도 여기에 연유되는 듯하다.

◈마이동풍 정치·주먹구구 행정

과거 우리는 한국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정치'와 '영화'를 꼽았다. 정치와 영화가 나라꼴을 우습게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영화의 성장은괄목할만하다. 엄청난 관객동원에 성공하고, 영화 수출로 적지 않은 외화를 벌어들였다. 한국영화는 이제 3류로 지탄받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비난을 퍼부어도자기혁신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마이동풍(馬耳東風) 정치다.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기대도 미련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 다음 대통령까지도 미리 실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나라를 그냥 떠내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나라의 중심에 서서 국가의 요동을 막아야 한다. 그 역할은 행정 관료들에게 주어진다. 행정이 정치를 끌 수는 없지만 정치에 안 끌려 갈 수는 있다. 바깥 살림(정치)이 엉망이니 안살림(행정)이라도 다부져야겠다는 소리다. 실제로 우리 행정은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해온 주역이 아닌가. 그런 탄탄했던 행정이 근년 들어 부쩍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하루하루가 조바심 나게 한다. 한동안 보건복지부가 주먹구구 의약분업으로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더니 통일부, 건설교통부, 외교통상부, 교육인적자원부가 줄줄이 장독을 깨고 있다. 대북 퍼주기 외교로, 항공2등급 판정으로, 남쿠릴 꽁치조업 금지로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최근에는 제 국민이 남의 나라에서 사형 당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가 국제 망신을 샀다. 국내 소요량에 아랑곳 않고 결핵백신을 대북 퍼주기 하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이 바로엊그제의 일이다.

◈안살림(행정)이라도 다부져야

교육인적자원부의 실책 또한 다른 부처에 비해 모자랄 것이 없다. 교원 수급대책도 없이 초등교 한 학급 35명의 과욕을 부리다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주먹구구조차 없는 행정이란 소리를 들을만하다. 이번 수능시험의 난이도 조정 실패와 교육정책의 일관성 결여 또한 하류 행정의 상징이다. 어린 학생들을 볼 낯이 없도록 만든 행정에 또 한번 탄식을 내뿜게 된다. 각 부처에서도 이런 터무니없는 실정(失政)에 대해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시원찮은 정치에 발목이 잡혀서, 인사질서가 엉망이라서, 장관이 무능해서 등등. 그러나 우물가 정치에 행정마저 빨려 들어가 버리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의지하겠는가. 허깨비 같은 정치에 놀아나지 말고 자기 정체성을 강화해보라는 주문이다. 내년에 이어질 지방선거, 대통령선거를 생각해보면 그런 바람은 더욱 강렬해진다. 행정마저 무너지면 나라의 미래가 없겠기에 안타까워 해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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