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하는 주부 모임 장한 사위상 2인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한다',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라는 옛말을 아직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체면과 형식을 우선했던 처가와 사위의 관계가 딸들의 위상 강화, 핵가족주의 등의 영향으로 편하면서도 가까운 사이로 바뀌어졌다.

명절에 처가를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일, 자녀 양육을 위해 처가살이도 마다하지 않거나 장인, 장모가 사위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세태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친부모 모시기를 꺼리는 경우가 빈번한 요즘 세태에서 중병을 앓고 있는 처부모를 모셔야 된다면 사위들의 반응은 어떨까.

지난 8일 '함께 하는 주부모임'으로부터 '제2회 장한 사위상'을 받은 2명의 중년 사위들은 다소 가벼워지는 듯한 이 시대 '처부모-사위'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케 한다.

◇윤영혁(49.공인중개사.대구시 동구 불로동)씨

윤씨는 아내와 함께 6년 전부터 자신의 집에서 장인, 장모와 함께 살고 있다. 팔순에 가까운 장인은 지난 99년 직장암에 걸려 기동이 불편하고 64세의 장모는 치매와 전신마비 증세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이다. 게다가 지금의 장모는 지난 87년 장인과 재혼한 사람.

윤씨의 처부모는 원래 따로 살았다. 그러나 장모가 재혼한지 2년만에 치매에 걸려 투병을 하던 중 전신마비까지 겹쳐 장인 혼자 장모를 병 간호하느라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였다. 처남이 2명 있지만 태국과 서울에서 어렵게 살고 있어 이들에게 장인, 장모의 부양을 맡길 수도 없는 형편.

"처부모도 친부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상의해 장인.장모를 모시기로 했죠".그렇다고 윤씨의 살림이 넉넉한 편도 아니다. 그가 사는 집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묶여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낡은 한옥이다. 부동산 중개일을 하지만 경기침체로 일거리가 줄어 살기가 빠듯하다.

장인.장모를 모시는 일로 부부 사이 불화가 있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윤씨는 "사실 힘들고 불편한 점이 많지만 부부 사이에 사소한 갈등이라도 겪지 않기 위해 아예 힘든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며 "부모 모시기가 힘들다고 포기할 순 없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점수(47.시내버스 기사.김천시 평화동)씨

"사위도 자식입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저를 큰 아들이라 생각하고 지내세요".

박씨는 정신이 맑지 못하지만 늘 사위에게 미안해 하는 장모(71)의 얼굴을 대할 때면 장모의 손을 꼭 잡고 마음을 편하게 해드린다.

치매증세에다 척추를 다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모와 함께 산 지 6년째.

혼자 살던 장모는 6년 전 중풍과 치매에 걸렸다. 박씨는 2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퇴원한 장모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쉽게 나을 병도 아니고 처가 식구들의 형편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시내버스 운전기사인 박씨는 쉬는 날이면 장모를 모시고 좋다는 병원, 좋다는 약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약의 효험인지 사위의 효성 때문인지 장모의 상태는 이웃 집에 혼자 놀러갈 정도로 좋아졌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장모는 서랍장을 열다가 넘어져 척추를 크게 다쳤다. 걷기조차 어렵게 됐고 치매도 재발했다.

아내와 처제는 미안한 마음에 장모를 병원으로 모시자고 했지만 박씨는 반대했다."병원에서 완치할 수도 없는 병인데 자식들 편하자고 부모를 병원에 맡길 순 없잖아요. 물론 집에서 모시는 일이 아내로선 더 힘들겠지만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직접 모시고 싶습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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