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 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45)성주신의 근본을 찾고자하는 성주풀이

가을걷이를 마치면 겨울나기 준비로 집 손질을 한다. 새 이엉으로 지붕을 이고, 문도 깨끗하게 새로 바른다. 따뜻한 보금자리 단장이 겨울준비의 으뜸이다. 날씨가추워질수록 집이 소중하고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집은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는 가족들의 둥지이다. 그런데 겨울을 앞두고 집 없는 실직 가장들이 지하철역으로 몰려든다는 보도에 아랫목에 앉은 사람조차 한기를 느낀다. 겨울나기 집 손질은커녕 집을 받치던 대들보마저 흔들린다는 집권여당 소식도 국민들을 걱정스럽게 만든다. 집권당을 지켜주던 성주신이 집을 떠난 까닭이다. 대목을 불러 저마다 자기 집을 직접 짓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성주치성을 드리고 성주신을 모셨다. 성주풀이는 집안에다 성주신을 모시는 노래이다.

성주님네 본이 어디신가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본일러라

솔씨 서말 서되 서홉을 받어서

동편에다 던지고 서편에다 던졌더니

밤이며는 찬이슬 맞고

낮이며는 태양을 쐬여

바늘침이 되였구나

점점 자라 소부동이 되였고나

대부동이 되였고나

경기도 여주 사는 한춘분 할머니 소리이다. 성주풀이는 자기 집의 성주신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내력을 노래함으로써 집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솔씨가 자라서 재목감이 되는 데서부터 대목이 집을 짓는 과정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는 노래이다. 따라서 이 노래의 들머리는 주로 성주의 근본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되기 일쑤이다. 답은 으레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다. 한결같이 안동 제비원이 성주의 본향이라고 하는 것은 집을 짓는 재목으로 쓸 나무가 모두 제비원의 솔씨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비원에 대부송이라고 하는 크고 잘 생긴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 소나무의 솔씨를 받아 여기 저기 뿌렸더니 그 소나무가 밤에는 이슬을 맞고 낮에는 햇볕을 받아서 처음에는바늘침 만하다가 점점 자라서 소부동이 되고 대부동이 되도록 자랐다는 것이다. 소부동은 기둥감이고 대부동은 대들보감을 말한다. 따라서 각 집의 기둥감과 대들보감이 모두 제비원 소나무에서 비롯되었기에 안동 제비원이 바로 성주의 본향이자 성주신앙의 메카인 것이다. 무당들의 성주풀이에서는 성주의 본향을 더 근원적으로 따진다.

성주임네 난데 본은

그 어디가 본일런가

본시 천상에 계시다가

글 한귀를 잘못 지은 죄로

남대천에 득죄하야 어이

인간으로 청배받아

지하땅으로 내려 와야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에

강릉 단오굿에서 무당이 부른 성주풀이이다. 성주신이 난 곳은 본디 천상이라고 한다. 다른 무가에서는 성주가 서천국의 천궁대왕과 옥진부인 사이에서 또는 천하국의천사랑씨와 지하국의 지탈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노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당들의 성주풀이에서는 성주의 근본을 서천국과 천하국 등 별세계의 신성한 존재로 설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지 않고 다시 현실세계에서 근본을 따지는데 역시 안동땅 제비원이라 노래한다.

이 성주풀이에서는 천상에서 성주가 글 한 귀를 잘못 지은 죄로 지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그곳이 바로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주는 집이 없어서 눈비 삼년, 돌비 삼년을 맞아가며 살다가 제비원 솔씨에서 자란 나무로 집을 짓고 그 집에 성주신으로 좌정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성주의 본향은 이원적으로 존재한다. 지상에서 문제되는 현실세계의 본향은 안동 제비원이지만, 천상이나 별세계에서 문제되는 초월적 세계의 본향은 서천국이나 지하국 등이다. 그것은 마치 예수의 본향이 현실세계에서는 예루살렘이지만 초월적 세계에서는 천상인 하늘나라인 것과 같다. 따라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또한 요셉의 아들인 것이다. 성주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 본향이 2원적으로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기독교의 메카는 예수가 태어난 예루살렘이듯이, 성주의 메카도 서천국이 아니라 안동 제비원인 것이다.

앞집이야 이목수야

뒷집이야 김목수야

집재목을 내러 가자

집재목을 내러 가니

손 다칠가 발 다칠가

산치성을 디립시다

한춘분의 성주풀이가 이어진다. 소나무가 대부동이 되도록 자라면 목수들이 집을 지을 재목을 베기 위해 산으로 간다. 톱과 도끼로 기둥감의 나무를 베어야 하므로 다칠 위험도 있다. 따라서 먼저 산신께 치성부터 드린다. 쌀 서 되 서 홉을 정하게 씻어다가 백편을 쪄서 차려 놓고, 집재목을 베어내더라도 사고 없이 무해무득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치성을 드린다. 그런 다음 집재목을 골라서 베어낸다.

앞남글 치받아 보니

까막깐치 새끼쳤네

그것도 성주라꼬

그 나무 한 개 제쳐놓고

그럭저럭 하야다가

한 나목 골래 잡아

소톱대톱 걸았구나

씨르릉 톱질이야

경주 사는 진석일 어른의 소리이다. 집 지을 재목을 함부로 베지 않고 산신께 치성부터 드리듯이, 재목도 아무 것이나 베지 않는다. 까막까치가 집을 지은 나무는 그들도 집을 지어 성주를 모시고 사는 터이므로 이를 제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베더라도 산신께 용서를 빌고 또 까막까치가 둥지를 틀고 있는 나무는 베지 않는다. 그것은 곧 남의 집을 빼앗고 성주를 부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한갓 미신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요즘의 자연보호 이상으로 공생적 세계관과 생태학적 가치관속에서 나무 베기를 절제했던 조상들의 슬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가운데 도막은 상량을 허고

끝에 도막은 지둥을 허고

가지 도막은 서끌을 허고

굽은 남그는 굽헤 치고

잦인 남그는 배를 치고

집 남기사 내였건마는

이 집의 집터 잡아보자

대목들이 성주목을 마련하여 재목으로 다듬는 상황이다. 성주목 구실을 할 재목감을 가려서 베어낸 뒤에, 가운데 도막은 상량 곧 대들보감으로 쓰고 끝 부분은 기둥감으로, 가지 부분은 서까래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대목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 가운데와 끝을 분별해서 쓰는 법도가 잘 드러난다. 굽은 나무나 잦은 나무도 버리지 않는다. 다듬는 데 따라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굽은 나무는 굽다듬고 잦은 나무는 배가 나온 곳을 쳐내서 제각기 적재적소에 쓴다. 비록 반듯하지 않은 나무라도 잘 다듬으면 집 나무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요즘 집권여당이 무너지고 있다. 당을 만든 대목이자 당을 지키는 성주나 다름없는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돌연 사임한 까닭이다. 집을 받치고 있던 대들보와 기둥을 갈아끼우지 않고 아예 빼내버린 셈이다. 썩은 기둥감 탓에 민심을 잃은 나머지 그 집 사람들은 선거 때마다 집단적인 왕따를 당한 후유증이 컸던 결과이다. 이한동총리 등용처럼, 성주목의 가운데 도막이 아니라 곁가지로 뻗은 서까래감을 가져다 대들보로 썼는가 하면, 박아무개 정책수석 발탁처럼, 성한 기둥을 두고 썩은 기둥으로 성주목을 받치고자 한 탓에 왕따를 자초한 셈이다. 굽은 나무는 굽다듬고 잦은 나무는 잦다듬어야 하는데, 제대로 다듬지도 않은 재목을 마구 쓰는 바람에 사흘 장관, 보름 장관, 한 달 장관도 속출했다. 이제 집을 지은 대목이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났으니 누군가 나서서 집을 다시 지어야 한다. 집권당을 지탱할 성주의 근본을 찾아 당을 바로세우지 않으면 겨울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김대중 없는 여당의 리모델링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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