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쌀값 추락-길은 없는가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WTO에 가입했고, 뉴라운드는 우리 쌀 시장의 빗장을 2005년이면 완전히 없애는 쪽으로 진행될 조짐이 더 뚜렷해졌다. 농민들의 분노는 지금 한창야적 시위로 번지고 있다. 정말 막다른 골목이고 길은 없는 것일까?

웅진식품의 '아침햇살'이라는 쌀 음료가 이런 상황에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음료가 지난 3년간 소화해 낸 국산 쌀은 무려 1만6천t 220억원어치. 4천만 전국민이 동시에 4끼를 먹을 수 있는 양이고, 1천만 서울시민이 6일간 먹을 쌀을 음료로 소비해 낸 것이다.웅진의 기업문화팀 김미경씨는 "1999년 1월부터 국산 백미.현미만을 사용해 음료를 생산, 해마다 5천300여t의 쌀을 소화해 내고 있다"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대인기를얻어 일본.홍콩 등으로의 수출액만도 지난 7월까지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했다. 두진우 종합기획실장은 "수출국이 이제 동남아를 넘어 미국.캐나다.독일.네덜란드.러시아 등으로 확대됐으며, 중국 등으로부터는 생산 기술 이전 문의도 잇따른다"고 했다.

안동 '회곡양조장'도 국산 쌀 소비의 새 장에 도전하고 있다. 대부분 막걸리 제조업체들이 중국산 수입쌀과 밀가루를 쓰지만, 이미 산약(마) 동동주로 대구권 공략에 성공했다는 이 양조장은 국산 쌀 사용으로 차별화해 고급 막걸리.동동주 시장을 창출하겠다고 최근 나선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양조장은 안동 햅쌀을 한달 평균 3t 가량을소화해 낼 참.

권용복(33) 대표는 "40㎏당 중국쌀은 2만7천원, 국산 햅쌀은 8만3천원 정도로 값 차이가 많지만 국산은 빛깔이 좋고 맛이 깔끔해 값이 병당 400~500원 비싸도 충분히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소비층으로 젊은 세대와 여성들을 상정, 대구시내 대학촌.민속주점 등을 통해 수요 저변을 넓혀 나가겠다는 것.

어쩌면 우리 쌀 농업의 장래를 좌우할지도 모를 쌀 가공식품들은 그 외에도 이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술.음료 등 기초적인 가공단계를 넘어 이제 신세대를 겨냥한 식혜.라이스버거.햇반 같은 아이디어 제품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식품개발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공용 쌀 소비는 여전히 총생산량의 3%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1993년에 30만8천t에 달했던 가공 소비는 작년에8만6천t으로 감소하기까지 했다. 쌀 가공 업체 수도 1995년 837개에서 작년 378개로 절반 이상이나 줄었다.

특히 정부가 공급하는 가공용 쌀도 1998년부터는 국산에서 수입쌀로 대체돼, 국산 쌀의 가공 소비량은 더욱 위축됐다. 1993년의 UR(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로 1995년(5만1천t)부터 2004년(20만5천t)까지 해마다 외국 쌀 의무 수입량을 늘려가도록 돼 있어, 이를 가공용으로 값싸게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외국산 쌀을 국산보다 값싸게 공급하니 가공업체들도 수입쌀을 선호할 것은 불가피한 일. 지난해 40㎏당 국산 쌀 평균가격은 8만여원이었던데 비해정부 공급 가공용 수입쌀은 2만6천~3만7천원선에 불과했다. 게다가 정부는 올해 수입쌀 재고를 줄이겠다며 지난달부터는 80kg당 7만4천120원에서 5만5천600원으로 25%나 값을 또 낮췄다. 수입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쌀의 국내 시장 잠식을 모두가 방관 내지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문에 국산쌀 가공산업을 제대로 육성 시키려면 정부의 애정과 탄탄한 식량 정책이 필수적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너나 없는 지적이다. 영남대 자연자원대학이재성 교수는 "가공기술의 발전과 함께 수입쌀보다 우리 쌀을 소비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식품개발연구원 쌀 연구팀 이현유 박사는 "일본은 생산량의 10~13%를 가공하고 있어 우리는 아직 초보 수준이어서 쌀 가공산업 육성에 대한 지원이 필수불가결하다"면서,"전체 외식산업 규모가 1986년 4조6천억원에서 91년 10조원, 2001년 15조원으로 계속 커지고 있는 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