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국가경영과 인물론

동양의 정치에 있어서 지인(知人)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했다. 서경에서는 "사람을 잘 아는 자는 밝다. 밝은 자만이 능히 사람을 관직에 안배할 수 있다"고 하여 고대부터 사람 파악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기(史記)중 '중니 제자열전'에서 공자도 제자 번지가 "지혜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사람을 아는 일"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공자는 또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서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현금의 한국 정치가 '사람을 알아보는' '지인'의 문제에서 총체적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라고 되뇌었으나 실패를 거듭한 결과 97년말 IMF 환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 자신 준비되지 않은 통치철학으로 국가경영 파탄을 가져왔다는 것이 냉엄한 역사의 평가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DJ는 어떤가. 인사에 있어서는 전혀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것이 현재의 총체적 국정 난맥상을 보면 알수 있다. 호남출신 우대라는 인사의 형평성 상실과 '부적절한 인물'의 기용 등이 맞물려 끊임없는 잡음을 일으키는 등 YS의 전철을 밟아 '인사망국론'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있는 소위 각종 '게이트'사건, 동교동계의 국정 농단 파문으로 박지원 정책수석이 물러나고 권노갑 전 고문이 사퇴 압력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임동원 장관의 사퇴와 재기용 파문, 남쿠릴 열도에서의 꽁치조업·일본 교과서 왜곡·중국의 재외교민 사형 파문 등에서 보여준 외교의 실종, 경제팀의 불협화음 등 '사람을 쓰는' 문제에 얼마나 수준 이하인지 잘 보여준다.

야당도 '인물론'에서 자유스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회창 총재는 자민련 정진석 대변인으로부터 "협량한 좁쌀 정치로는 국가를 경영할 수 없다"는 비난을 듣는 등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총재는 현재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여당을 압도하면서 느긋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 정부의 실정과 반DJ 정서에 편승한 측면이 다분해 정치적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지지도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다. 이 총재는 국가의 백년 대계라는 대의에서보다 여당에 대한 공격이라는 반사이익에다 지역정서를 자극해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방식을 취해 미래의 비전에 따라 국가경영을 해 나갈 지도자로서의 신뢰를 국민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여당 대통령 후보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인제 최고위원도 97년 대선 당시의 대통령 불출마 선언 번복 등으로 진정한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문제와 관련, 미심쩍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테러 사태 여파 등으로 인한 전쟁과 경기 침체, WTO 4차 각료회의에서의 뉴라운드 출범 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새로운 도전과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뒤늦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사퇴, 경제를 살리는데 매진하고 이회창 총재도 국정운영에 적극 협력할 뜻을 밝히는 등 새로운 국가경영 구도가 짜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급변하고 있는 대내외 여건 속에서 조선시대나 구한말처럼 당파적 정쟁으로 집안싸움만 계속하다가는 21세기 세계의 신 질서 태동의 태풍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낙오자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국가 경영과 관련한 진정한 리더십을 대망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국의 WTO가입 등 동아시아만 하더라도 거대한 변화의 태풍이 밀어닥치고 있는 때에 남북문제 등 우리민족의 진로를 비롯, 거시적인 안목의 비전을 가지고 국가발전 전략을 추진해 나가는 진정한 지도자상이 아쉽다.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잠롱 전 방콕시장, "지도자는 연약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며 싱가포르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린 이광요 전 총리, 중국의 개혁을 위해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그들의 것이고 나머지 1개는 내 것이다"라며 비장한 각오로 밀어붙여 고도성장의 밑바탕을 마련한 주룽지 총리처럼 우리나라에도 열정과 의지와 경륜을 갖춘 진정한 '비전'의 지도자가 나와야 할 때다.

신도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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