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이동전화기 속에 누운 그대목소리와 함께 누워있네

가을 앙상한 물푸레나무처럼

물푸레나무 소리가 들린다

해와 달, 별을 넣지 못하고

저 보랏빛

산빛, 떡갈나무 숲을

네 소리속에 넣지 못하고

011 번호를 누른다

기차소리, 파도소리, 낙엽소리

하늘, 꽃 소식 되찾지 못하고

이동전화기 속

끊어진 사랑의 말 넣지 못하고

죽음과 이별의 말 넣지 못하고

떡갈나무 헤진 삶의 이파리

손 끝에 떠는 미세한 그리움 넣지 못하고

이동전화기 속

너의 삶 그리운 영혼의 시

넣지 못하고

흙으로 사는 슬픈 삶, 영원의 사연

넣지 못하고

-박해수 '이동전화기'

이동전화기는 말그대로 이동하면서 의사소통하는 기구이다. 우리는 이동전화기가 갖는 의사소통의 전천후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 시는 그런 믿음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예민한 문명비판이다. 시인에 의하면 이동전화는 소통불능이다. 지금 당장 이동전화기로 애인에게 전화해 보라. 단지 무표정하고 냉정한 기호만 갈 뿐이지, 어디 해와 달, 별의 목소리와 사랑의 목소리를 넣을 수 있는지.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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