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식자랑 아닙니다 어른공경이 먼저죠"

"큰 아들은 군수, 작은 아들은 경찰서장을 시키고 싶었지요". 청도의 박기탁(58·금천면 동곡리)·김요자(58)씨 부부는 요즘 한평생 농촌에서 흘려온 땀을 한꺼번에 보상 받았다.

자신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큰 아들(영호·31·영남대졸·대구지법 판사)이 1994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한데 이어 둘째(영두·29·경북대졸) 아들도 최근 발표된 45회 행정고시에 합격했기 때문. 그래서 8년 전엔 큰 아들의 고시 합격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던 것처럼 지금 동네엔 둘째의 행정고시 축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하지만 박씨의 자녀 가르치기는 엄격하기 그지 없다. 15일엔 두 아들 모두를 면내 22개 경로당을 고루 돌며 어른들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도록 했다. "자식 자랑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놈들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해도 효도를 모르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필요없는 인간이 되는 것 아닙니까? 고시 공부야 학교에서 했겠지만 비록 일개 농부이지만 아버지는 인생공부를 시켜야지요". 아들들을 이 사회에 뭔가 이바지할 수 있는 인간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고 했다.

둘째가 행시에 합격한 뒤 박씨는 동네잔치를 열까도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경로당 난방비라도 보태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방향을 바꿨다. 그래서 아껴 모았던 통장에서 선뜻 1천만원을 인출했다. 경로당 마다 난방용 기름값 25만원, 돼지고기 1관, 떡 3되, 소주·음료수 각 1상자씩을 아들들 손에 들려 보내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그동안 아들들이 어릴 때도 가정교육을 아주 엄격히 해 왔다고 했다. 집을 나설 때나 다녀와서는 반드시 부모에게 인사토록 하는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返必面)을 실천케 했다. 그러다 보니 큰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부모 허락 없이 사흘간 고시촌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다녀오자 혼을 내 3시간 동안이나 문 밖에 꿇어 엎드려 사죄한 뒤에야 용서하기도 했다는 것.

15일에도 두 아들이 경로당 인사를 끝내고 오자 다시한번 "돈은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일 뿐 인간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되 옳은 일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子曰 見義不爲 無勇也)고 하셨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청도·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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