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 대통령에 취임하는 즉시 당 총재직을 사임하고 오로지 국정수행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총재직 사임은 당의 자율화, 민주정치발전 및 국회의 권위 확립에 크게 기여할 뿐아니라 유능한 인재들에게 당을 맡김으로써 후계자를 육성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997년 여름, 새정치국민회의 전당대회에서 통산 네번째 대통령후보에 지명돼 후보수락연설을 하면서 당원과 국민들에게 이렇게 공언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DJ가 약속대로 취임 직후 여당인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했더라면 민주당은 당내 민주화가 꽃피는 보다 활기차고 책임있는 집권당으로서 국회운영과 정국을 주도했을 것이다.
1996년 5월초 15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난후 설악산에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생산적인 정치와 국회를 위한 방안'이라는 표제를 걸고 개최한 국회의원 연수회에서 연사로 참석한 필자는 분명히 얘기했다.
"긴 얘기가 필요없다.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고 여러분들이 정치의 주역이 되려면 이 자리에서 대통령(당시 YS)의 총재직 사퇴를 결의하고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지난 40여년간 한국은 경제, 사회, 과학,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유독 정치만은 구태(舊態) 그대로다. 대화와 타협은 말 뿐이고 국리민복보다 당리당략이 우선이다. 걸핏하면 정쟁과 극한대립이 빚어진다. 정치가 경제 등 다른 분야의 발전을 이끌기는 커녕 국민의 발목을 잡는 걱정거리로 전락한데는 대표적인 원인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유지하고 당의 대소(大小)인사에서 정책과 운영 등 모든 것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국가경영만 해도 힘들고 바쁜 대통령이 여당을 관장하고 지휘하니 후원금과 조직력이 방대한 여당은 덩치는 공룡같으나 모두가 DJ와 청와대 눈치 살피기에 몰두하게 되니 자생력도, 자립의지도 없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이 지경이니 국민의 신뢰와 기대가 어떠하겠는가?결국 강력한 여당, 강력한 정치, 일사분란(一絲不亂)만 추구하다가 정치의 경직화, 비능률화, 그리고 여당의 무기력증만 자초하게 된다. 그래서 노태우 전 대통령도, YS도 임기말에 자의타의로 당을 떠나게 되고 DJ 역시 똑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DJ의 당총재직 사퇴에 대해 당원들과 국민은 우려, 환영, 의구심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려는 거대한 권력의 공백에 따른 당의 혼란을, 환영은 이제야 여당에 새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에 의구심도 만만치 않다. 즉 하나는 당 지분(持分)의 60~70%가 DJ세력이어서 사퇴후 총재와 대통령후보 선출에 대한 이견으로 혼란만 가중될 경우 "역시 DJ가 있어야"라는 논리를 부르고 또 복귀하는 것 아닌가하는 관측이다. 또 하나는 사퇴후에도 실질적으로 총재와 후보선출 등 당 운영의 전부를 막후에서 관여하는, 수렴청정을 하는 게 아닌가하는 해석이다. 이런 의구심은 199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자 정계은퇴를 선언(당적은 보유하고 있었다)해서 국민들로부터 동정과 찬탄을 받았던 DJ가 3년 뒤 슬그머니 정계에 복귀해서 끝내 대통령에 당선됐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도 여당 당적은 유지한채 백의종군을 선언한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렴청정과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만에 하나 그것이 현실화 된다면 DJ와 민주당, 국민과 국가 등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DJ의 말대로 '영원한 대통령도, 영원한 장관'도 없다. 따라서 DJ는 연말께 대대적인 정부개편과 함께 남은 임기동안 침체된 경제와 민생되살리기, 개혁작업의 마무리와 함께 실패하고 잘못된 국정분야를 최대한 바로 잡고 특히 특정지역에 편중된 각종 고위직 인사를 정상화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 비록 3개 지역이지만 10.25 국회의원 재보선의 참패는 DJ정부의 갖가지 실정(失政)과 인사편중, 그리고 대통령의 독선독주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자 시정명령인만큼 DJ는 겸손한 자세로 국가경영에만 총력을 경주하는게 마땅하다.
새 전기를 맞은 민주당은 당내민주화를 만개시켜 당원 및 국민과 함께 새총재 등 지도체제와 대통령후보를 민주적으로 선출함으로써 책임정당, 진정한 민주정당의 면모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국민은 민주당을 지켜볼 것이다.
이성춘 언론이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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