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해광칼럼-이재문화와 C교수 이야기

오늘은 좀 비(非)정치적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가 흔히 '제3세계'라고 하는 것은 경제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유색인종으로 지구의 남반구에 위치하면서 과거 식민지 경험을 소유한 국가를 통칭한다. 이들의 공통적 특징은 개발도상국이란 점이다. 한결같이 제3세계는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하다. 왜 그런가. 그 이유를 정치문화에서 규명하려는 논의가 바로 정치문화설이다. 문화가 선진국에 비교하여 커다란 하자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무엇이 제3세계 문화이길래 미개발국이니 저개발국이니 하는 오명을 쓰고서도 구조적으로 제3세계 문화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가? 바로 이재문화(理財文化, chrematistic culture)의 결핍이요, 호민관 문화(praetorian culture)에 탐닉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제1세계 정치문화로서 선진공업국의 경제발전사를 보면 창의성, 독립성, 검약성, 절제성, 타협성, 근면성, 정직성 등이 국민들에게 거의 체질화되어 있다. 반면 후자는 제3세계 정치문화의 공통적 특징으로서 어떤 사회집단이나 정권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집권하거나 설사 집권하더라도 아주 미약한 정당성을 가졌을 경우인데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이 국민들에게 정당성 획득에 정치력을 경주하거나 소진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아직 제3세계 선발국이지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보기엔 여러모로 어려운 입장이다. 이재문화가 체질화 안되어 있고, 프리토리안 문화에 역대 정권들이 침잠되어 있었다. 정치용어도 생경스런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를 애써 애용하는 것도 호민관 문화에서 탈피하려는 힘겨운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강압적 방법에 의한 부정선거가 아닌 자유투표로 집권했다 할지라도 창의성과 근면성, 검약성과 절제성이 미약하다면 호민관 문화요, 궁핍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창의적이고 도덕적 민주시민의 양성을 초등학교 정면에 커다랗게 내걸어야하는 국가라면, 3D 직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된 사회라면, 근면이나 절제가 부족한 사회이고, 기름 한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살 집은 없어도 자가용은 가져야 행세하는 사회라면 검약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세계의 고리대금업자라는 IMF에게 단돈 195억달러가 없어서 빌려오고, 경제주권을 담보하는 국가라면 정녕 이재문화권이라고 자부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C교수는 최근 승용차를 교체했다. 그는 1989년식 르망 소형차를 꼭 12년12일간 탔다고 당당하게(?) 자랑하고 있다. 마흔이 훨씬 넘어 외동딸을 둔 그는 어린 딸로부터 "짝꿍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인데도 큰차를 타는데, 아버지는 왜 작고 늙은 차를 타느냐"면서 투덜대는 소리를 4년 이상 더 듣고 나서야 타던 차를 처분하고 대망의 새차를 뽑았다. "당신처럼 그렇게 하면 자동차 3사는 망한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의 옹고집과 집요한 검약성과 절제력에 찬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재문화의 결핍증에 걸린 수많은 우리 사회의 군상들 때문이다.

정말로 우리가 C교수처럼 12년12일이나 탄 차를 지조있게 탈 수 있는 보다 많은 교수들이 대학사회를 지킨다면 미래의 한국사회 판도는 분명 지금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꼭 C교수처럼 자린고비의 삶을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미화 200억 정도가 모자라서 경제적 국치로까지 불리는 IMF 지배를 경험했던 우리들로서는 20년 묵은 가방에 구두 뒤창을 세곳을 전전하여 기어이 갈아서 쓰면서도 의연한 C교수 같은 이가 많을수록 우리 사회도 건강해지리라 믿는 것이 나만의 해석일까. 막스 베버가 그의 명저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면, 검소, 정직 및 시간엄수가 전후 독일을 재건한 4대 정신이라고 한 말이 새삼 뼈속 깊이 와닿는다. 장해광 계명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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