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상인동 아줌마 풍물단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새마을금고 지하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이곳에선 열기와 생기가 넘친다. 신명난 사물놀이 소리가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잡는다.

상쇠를 맡은 서열학(54)씨의 느릿하던 꽹과리 소리가 점점 빨라지는 참이었다. 중간 중간 강약조절로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얼쑤"

"허이…, 허이…"

북을 잡은 강수자(51)씨의 추임새가 연신 흥을 돋운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장구 잡이의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순수하게 아줌마들로만 구성된 월곡새마을금고 풍물단(회장 서열학). 올해로 창단 7년째를 맞았다. 30대 후반에서 50대의 주부들이 뒤늦게 '제 물을 만난 듯' 열심이다. 이들에게 스트레스란 없다. 국악을 만나고부터 성격이 밝아지고 덩달아 집안분위기까지 좋아졌다는 게 빈말이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매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단순한 취미활동만은 아니다. 이렇게 익힌 '소리'로 봉사활동에 나서기 때문. 악기가 많아 이동에 어려움이 많지만 스스로 다 해결한다. 지난달엔 고령 대창양로원엘 다녀왔다. 대구시노인체육대회 등의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나서 흥을 돋운다. 5월이면 동네 아파트단지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소규모 경로잔치도 연다. 기교면에서야 전문가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들 아줌마들의 가락에선 인생의 맛이 묻어 나온다. 그 가락을 통해 사는 재미를 배운다. 그렇다고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아깝다. 작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때는 현장에서 1주일 무료공연을 했을만큼 나름대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봉사활동으로 활력을 재충전해서일까요. 사물놀이부터 춤, 민요까지 열의가 보통이 아니랍니다".

매주 금요일 이들 열성 아줌마들을 지도하는 강사 최자희(56)씨의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봉사활동에 나서고 노인들을 돕는다지만 정작 큰 기쁨을 얻는 건 자신들. 평범한 주부인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저 즐겁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덩달아 우리들도 기쁘죠"

풍물단 창단멤버인 강수자씨는 국악이 취미활동의 종착역이라고 단언했다.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악보를 배워야하기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한다. 그래서 노후 치매예방에도 그만이라고 국악예찬을 늘어놓았다.

보통 각종 봉사활동에 따라나설 만큼의 실력을 갖추려면 1년 정도는 배우고 연습해야한다. 기초반으로 입문해서 그때까지가 제일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장구를 배우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김명아(41)씨는 건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했다. "동네아줌마들끼리 식당을 찾아다니며 점심을 해결하고 수다를 떨기보다 보람있죠. 뭔가를 배운다는 것도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아파트에선 시끄럽기 때문에 제대로 장구연습을 할 수 없는 게 제일 큰 아쉬움이다. 대신 베개를 끌어안고 장구삼아 팔을 휘둘러본다. 라면상자 등 두드릴 수 있는 것만 보이면 자리잡고 앉아 연습하는 것도 이 시기. 때론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워서도 무릎을 번갈아 치며 박자연습을 하다 남편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처음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남편들도 내용을 알고부터는 봉사활동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도 한다.

국악을 배우러오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정태순(59)씨는 길을 가다 지하실에서 흘러나오는 신명나는 가락에 끌려 며칠을 벼른 끝에 나오기 시작했다. 70대의 한 할머니는 제발 못나오게 하지만 말아달라며 5천원을 던지다시피 주고가기도 했다. 이곳의 기초반 수강은 무료다. 상급반은 월 2만원.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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